<대만총통선거> 장징궈 비서출신 ‘샤오마거’, 내조여왕 저우메이칭

2012-01-15 14:30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대만 총통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마잉주(馬英九•61) 총통은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1981년 장징궈(蔣經國) 당시 총통의 영어 통역 비서로 활동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에는 42세의 젊은 나이로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에서 법무부장(장관)에 발탁됐고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금권정치, 부패, 폭력조직과의 전쟁 등으로 청렴결백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법무장관에서 물러나고 나서는 국립 정치대학교 법학과 교수로 강단에 서기도 했다. 마 총통은 1998년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시장을 5%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되면서 정치적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을 연임했다. 그는 타이베이 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과 버스 전용차로 구축 사업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2008년에는 제12대 대만 총통선거에 나서 민진당의 셰창팅(謝長廷)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181cm의 훤칠한 키에 미남형인 그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대중적 지지를 받으면서 ‘샤오마거(小馬哥, 마씨 성의 작은 형)’라는 별명도 얻었다. 마 총통은 2008년 5월 취임 후 4년간 대만 경제를 살리고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한 것 등을 성과로 내세워 이번에 연임에 성공했다.

마 총통은 지난 2010년 10.72%의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등 그동안 상당 부분 경제적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재임 기간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주택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는 등 서민의 체감 경제는 오히려 악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선거에서도 ECFA 혜택이 일부 기업인 등에게만 국한되고 일반 서민은 체감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는 홍콩 주룽반도에서 태어난 뒤 이듬해 대만으로 이주했다. 국립대만대 법대를 졸업했고 1974년 국민당의 중산(中山)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뉴욕대학 법학석사(1976년), 하버드대학 법학박사(1981년) 학위를 받았다.

가족으로는 부인인 저우메이칭(周美靑)과 두 딸이 있다. 저우메이칭 여사는 이번 선거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선거가 종반전에 들어서면서 마 총통 일행과는 별도로 민진당의 정치적 아성으로 ‘적진’에 해당하는 대만 남부권을 돌며 지지세를 이끌어 냈다.

비록 민진당의 텃밭이지만 저우 여사가 가는 곳마다 인파들이 몰리면서 인기를 실감케 했다. 마 총통의 선거기호인 2번을 뜻하는 저우 여사의 ‘V자’ 포즈는 현지 신문의 주요 면에 자주 등장했다.

저우 여사는 지난해 한 시사주간지가 여론조사를 한 결과 조사 대상의 70%의 지지를 받았다.대부분 응답자가 그녀의 행보가 마 총통의 연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적 불개입과 어린이와 학생들에 대한 관심, 적극적인 공익활동 등이 지지 이유로 꼽혔다.

특히 서민적이고 검소한 복장은 국민적 존경을 받았다. 그녀는 평소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이번 선거 유세 기간에도 청바지를 자주 입고 유세장에 나타났다. 이런 검소한 자세가 때로는 문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식에 입고 나타난 드레스가 과거 공식 행사장에서 한차례 입었던 것과 같은 옷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