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 <93>차오젠밍 – 부패척결 최전선에 위치한 최고인민검찰장
2011-12-06 13:57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중국의 사법제도는 크게 수사제도, 재판제도, 감독제도로 나누어진다. 공안기관, 인민법원, 인민검찰원 등은 사법제도의 집행을 관철시키는 3대 사법기관이다. 인민검찰원은 국가의 범죄 기소 및 법률 감독기관이다. 기소권과 감독권을 지니고 있으며 범죄기소 외에도 심사, 판결, 집행등의 활동을 감독한다. 중앙에는 최고인민검찰원이 있고 그 아래로는 지방각급인민검찰원 및 군사검찰원 등 전문인민검찰원 등이 있다.
최고인민검찰원은 지방 각급 인민검찰원과 전문 인민검찰원의 업무를 지도하고, 상급 인민검찰원은 하급 인민검찰원의 업무를 지도한다. 최고인민검찰장이 차오젠밍(曺建明)이고 11명의 부검찰장이 포진해 있다. 검찰장의 임기는 5년이며, 1회에 한하여 연임이 가능하다.
차오젠밍은 2008년 중국 역대 최고검찰장 중 가장 젊은 53세의 나이에 검찰장에 올랐다. 차오젠밍의 이력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1955년 9월 상하이에서 태어난 이후 그는 문화대혁명 시기 상하이의 한 식당의 노동자로 하방됐다. 식당 직원으로 일하던 그는 1975년 상하이 위생국으로 배치받아 잠깐동안 일을 하게 된다. 이후 대학입시가 부활하면서 1979년 화둥(華東)정법대학에 입학해 1983년 법률과에서 학사학위를 취득했고, 1986년에는 국제법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당시는 해외유학열기가 높았고 화둥정법학원의 3명의 석사졸업생 중 유일하게 그만 중국에 남았다.
그해 차오젠밍이 발표한 '외자기업의 토지임대와 부동산사업영위에 대한 법률고찰'이라는 논문은 법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상하이시 조직부 인사들은 이 논문을 연구했고, 이론상이나 실제상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으로 판단했다. 논문은 베이징과 중국공산당 중앙 유관부문들에까지 핵심참고자료로 올라갔으며 이 논문으로 인해 차오젠밍은 학계에서 유명세를 탔다.
그리고 결국 1988년 4월1일 7차전국인민대표 제1차회의에서는 헌법수정안을 통과시키면서 그의 논문은 법으로 반영됐다. 이로써 어떤 조직이나 개인도 침탈, 매매, 임대 혹은 기타의 형식으로 토지임대를 금한다는 조항은 삭제됐으며 법률에 의한 토지사용권 이전이 가능해졌다.
중공중앙이 개최하는 법률지식좌담회는 차오젠밍을 자주 초청해 강연을 하게끔했다. 1994년 좌담회에서 그는 국제상업법률제도와 관련 무역협정에 대해, 1995년 좌담회에서는 금융안전과 법제건설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그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 중공중앙은 1999년 그를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으로 영입한다.
2005년 9월 세계법률대회가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개최됐을 때 차오젠밍이 대회중국조직위원회 집행부주석를 맡아 준비작업을 지휘했다. 이 대회에는 1500명이 넘은 인사들이 참석했고 34명의 해외 수석대법권이나 최고법원원장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대회기간에 차오젠밍의 부인이 불행히도 사망했다. 하지만 차오젠밍은 매일 회의에 참석했고, 아무도 그가 상을 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도 그가 당시 심적으로 그같은 아픔을 겪었는지 몰랐고 그의 열정과 책임감은 높이 평가됐다.
2008년 그는 최고인민법원 부원장에서 인민검찰원 검찰장으로 영전해갔다. 그는 특히 부패척결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차오젠밍 검찰장은 별도 보고를 통해 “지난해 직무와 관련된 범죄 혐의에 연루된 ‘현처급(지방 현장 또는 중앙부처 처장급)’ 이상 관리가 2723명에 달했으며 이중 188명은 국장급, 6명은 성과 중앙부처의 최고위급 간부들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고인민검찰원은 작년 한 해 해외로 도주한 부패관리 1282명을 국제공조를 통해 잡아들여 74억위안의 범죄수익을 추징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