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 <94>누얼바이커리 – 소수민족 차차기 선두주자
2011-12-06 13:55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누얼 바이커리(努爾白克力, 위구르발음:누르 베크리)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주석은 중국에서 유일한 소수민족 출신면서 1960대 이후에 출생한 부장(장관)급 인사다. 소수민족 자치구에는 성장이 없는 대신 주석제도가 존재한다. 보통 자치구 서기는 한족이 맡고 자치구정부 주석은 소수민족이 맡는다. 현재 신장자치구 서기는 한족인 장춘셴(張春賢)이다.
소수민족 출신인 탓에 언론들은 그를 ‘6세대 선두주자’라는 식으로 소개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얼바이커리는 뚜렷한 자신만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중국은 소수민족 배려의 차원에서 부총리 한 석에 소수민족 인사를 임명해 왔다. 누얼 바이커리 역시 향후 상무위원급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정치국위원까지는 충분히 승진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특히 그는 2009년 신장위구르 지역 폭력사태를 겪으면서 중국공산당 중앙의 입장을 충실히 따랐고, 2011년 일어난 테러사태에도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그는 한족 동화정책에 호응하는 철저한 반(反)분리주의자다. 1990년대 중반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국의 한 인사가 그에게 “신장이 중국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했었다. 그러자 그는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1492년에 훨씬 앞선 기원전 한(漢)왕조때부터 신장지역은 중국의 통치를 받았다“라며 ”“나는 위구르족이기에 앞서 중국인이고 공산당원”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또 소수민족 언어와 함께 반드시 한어를 배우도록 한 중앙정부의 이중 언어교육 정책을 철저히 지지한다. 상당수 위구르인들은 “이 정책은 우리 언어를 말살하기 위한 정책”이라며 거부하지만 누얼 바이커리는 “그럼 왜 영어나 일어같은 외국어를 배우는가”라며 “한족의 말을 배우는 것은 신장을 발전시키기 위한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다.
누얼바이커리 주석은 1961년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서쪽으로 500km가량 떨어진 보러(博樂)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했던 그는 신장(新疆)대 정치학부에 합격했고 졸업한 뒤에도 대학에 남아 10년간 재직하면서 대학의 공청단 서기와 대학 당위 상무위원 등을 역임했다.
이어 인구 350만명의 변경 도시 카스(喀什)시 행정공서(行政公署) 부(副)전원(專員, 최고지도자)을 거쳐 36세 나이로 자치구 성도인 우루무치의 시장을 지냈다. 당시 그는 자치구 내 시장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우루무치 시장 시절엔 산업시설과 자동차에서 나오는 오염을 크게 줄이고 녹화사업을 강력 추진해 맑은 날을 좀처럼 볼 수 없던 시내 대기오염을 크게 줄였다. 그리고 2008년 신장자치구 정부의 주석에 올랐다.
이후 2009년 7월 사망자 197명과 1700명의 부상자를 낳은 것으로 전해지는 신장위구르자치구 유혈 시위사태가 발생했다. 사태가 진압된 후 기자회견에 나서 사태의 경과와 진압결과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은 것도 누얼 주석이었다. 그는 “위구르족 분리주의자들이 5일 오후 5시께 우루무치 인민광장에 모여들면서 사태가 촉발됐다”라고 설명했지만 당시 위구르족 시위대의 요구 사항이나 이번 유혈 폭력 시위 폭발 과정, 사상자 중에 시위대와 경찰이 각각 얼마나 포함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다.
그는 자치구정부 주석으로서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지난 9월 위구르 자치구의 국경 도시 2곳을 특별경제구역(SEZ)으로 만들기 위한 세부 방안을 발표했다. 경제특구는 신장구 서부도시 카스에 50㎢, 북서부지역 코르고스에 73㎢ 규모로 조성된다. 카스 지역에서는 물류와 전자, 섬유, 건설자재, 금속공학, 재생 에너지 산업이 들어선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들어오는 천연가스관이 있는 코르고스 지역에서는 농산품과 제약, 자동차 산업을 중점 육성한다. 누얼바이커리는 지난달 열린 경제특구 설명회에서“경제발전의 주축은 기업이다"라며 "적극적으로 대기업을 특구에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각부문은 기업들에게 빈틈없이 서비스를 베풀어 기업들이 안심하고 투자하도록 하는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