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 <81>상푸린 – 중국증시 10년의 산증인

2011-11-03 14:33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중국의 증권감독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10년간 재직했던 상푸린(尙福林)은 지난달 30일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동했다. 장관급 직책으로의 수평이동이지만 중국의 은행부실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맡은 업무의 중요성은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45세의 젊은 나이에 인민은행 부총재에 올라 농업은행 총재를 지냈으며 10년동안 증감회 위원장으로 활약한데 이어 은감회 위원장에 올랐지만 상푸린은 올해 60세로 아직 젊은 편이다. 그는 은감회 위원장으로 6년을 근무한 후 2017년에 국무원 부총리로 승진해 정치국위원에 진입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1951년 11월생인 샹푸린은 산둥(山東)성 지난(濟南) 출신이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4년 동안 군 생활을 한 뒤 베이징에 올라와 73년 인민은행 잉타오(櫻桃) 지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문화대혁명이 종료되고 대학입시가 부활한 1978년 상푸린은 베이징재정무역학원에 입학해 금융을 전공한다. 대학 졸업 후 인민은행 본점의 금융계획사(司)로 복귀했으며 이 곳에서 사장까지 차근차근 승진했다.

그러던 그의 인생은 1993년 인민은행 행장조리로 올라서면서 초고속 승진의 길을 달리게 된다. 당시는 주룽지(朱鎔基) 부총리가 인민은행장을 겸임하던 시기였다. 주룽지는 국유기업의 부실채권을 꼼꼼하게 처리하는 상푸린에게 신뢰를 아끼지 않았으며 그를 1996년 인민은행 부행장으로 승진시켰다. 주룽지가 국무원 총리로 올라섰던 1997년에는 중국의 금융정책 수립기구 화폐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2000년에는 49세의 젊은 나이에 부실이 가장 심했던 농업은행 행장에 임명됐다. 과감한 구조조정 끝에 농업은행을 흑자로 돌려 놓은 그는 2002년 12월 저우샤오촨(周小川)의 후임으로 증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그는 10년동안 중국증시의 부침을 몸소 경험하게 된다.

2003년 1월 그는 조용히 상하이(上海)거래소와 선전(深圳)거래소를 방문한다. 당시는 중국증시가급등하던 시기였다. 그는 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말을 아꼈다. 그러던 상푸린은 그해 11월 주식발행심사위원회 개혁의 깃발을 내세웠다. 그는 심사위원회 위원을 80명에서 25명으로 대폭 감축하고 신분 비밀 규정을 폐지했다. 투명한 주식발행 심사를 위한 진일보된 조치였다.

그리고 2004년 상푸린은 위탁보증금 유용을 근절하기 위해 증권업자의 위탁 재테크를 철저히 조사했다. 고객들의 자금을 유용하던 증권업자들이 철퇴를 맞으면서 주가지수가 폭락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상푸린에 대한 원망이 들끓었다. 이로 인해 증감위원장 교체설이 시장에 나돌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당국이 상푸린의 정책 방향을 옳은 것으로 판단하며 교체설은 루머로 그쳤다. 당시 시장의 비난에 대해 상푸린은 “지수가 1포인트 하락할 때마다 투자자는 9억위안의 손실을 입는다”며 “마음이 아프지만 증권시장의 썩은 부위는 반드시 도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상푸린은 2005년 하반기 비(非)유통주 개혁을 실시한다. 대형 국유기업들은 그동안 상장을 통해 자금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50%이상의 주식을 비유통주로 지정당했다. 이 제한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시키는 것이 개혁의 골자였다. 증감회는 국가 소유의 비유통주를 시장에 풀어 국가재정을 확보하는 한편 해당 상장사의 기존 주주에게는 손실 보전 차원에서 무상주(또는 현금)를 나눠주기로 했다. 비유통주가 시장에 풀릴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주가가 급락했다.

비유통주는 2007년부터 시장에 투하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전체적으로 약 3조2000억 위안의 비유통주가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2007년 10월 6000선을 돌파했던 상하이 종합지수는 비유통주 폭탄에 더해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1700포인트까지 후퇴하고 만다.

2008년 말에 입안돼 2009년부터 실시된 4조 위안 규모의 내수부양 조치로 중국증시는 일제히 반등했다. 증시가 회복하자 2008년 시행했던 신규 기업공개 금지조치를 해제했다. 각 기업들의 상장과 증자가 줄을 이었다. 과도한 물량이 시장에 터져나오면서 중국증시는 다시금 횡보하며 조정장세를 이어가게 된다. 상푸린은 이 같은 조치들을 취하면서 중국의 주식시장을 적절하게 관리해냈으면서 국가의 이익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