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민심이 두렵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
2011-10-20 23:33
(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민초들이 권력자에게 바라는 것은 결코 굉장한 '은혜' 같은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나라에서 돈 달라면 돈을 내놓고 일을 하라면 공짜로 일도 해줄테니 하루하루 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기만 바랄 뿐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한없는 욕심쟁이처럼 백성들에게 자꾸만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돈도 주고 일도 해주는데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는 일까지 무조건 참으라는 식이다.
총칼로 여론을 짓누르는 독재정권 속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지만, 말 한 마디가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는 인터넷 세상에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권력자들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정적이 아니라 민심이어야 하는 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재 국민들의 인내력을 시험하는 가장 높은 곳의 권력자다. '5년 계약직 권력자'인 이 대통령은 그동안 최고의 권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세간의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탈세, 편법 병역면제, 논문 위조 등으로 공직자로서 결격사유가 분명한 이들을 장·차관으로 앉혔고, 전 정권에서 임명한 공직자와 공기업 사장들은 이유불문하고 죄다 내쫓았다. 그 빈 자리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지역)' 출신들로 채웠다. 그래도 이 대통령의 욕심은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듯하다.
현 정권의 권력 허용 기간이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최근 대통령 사저 문제가 불거졌다. 이 대통령이 퇴임 이후 거처할 목적으로 추진하던 서울 내곡동 사저 건축계획이 논란이 된 지 열흘 만에 백지화됐다.
서민들은 전셋값 폭등으로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판에 대통령이 수십억원을 들여 호화로운 사저를 마련하려 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비난여론이 빗발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과거의 태도와는 달리 이번엔 이례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한 것도 그만큼 비난여론이 거셌음을 방증한다.
하지만 민심은 여전히 싸늘하다. 전국민적 공분을 유발했는데도 이 대통령은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여당 대표의 입을 빌려 사저 백지화 방침을 국민들에게 알렸기 때문이다.
뺨 때린 사람이 사과는 하지 않고 약만 발라준다면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을까. 그러고보니 이 대통령은 유난히 대국민 사과에 인색한 듯하다. 최근 하루가 멀다하고 불거지는 측근비리에 대해서도 "창피스럽다"고만 했을 뿐이다.
회사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책임자는 결국 최고경영자다. 경호처장 한 사람이 대타로 책임질 일이 아니며, 그런다고 해결도 되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진정 민심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이라면 국민 앞에 고개 숙이고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해명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