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수수료 ‘찔끔인하’, 난국 풀기엔 역부족

2011-10-16 10:15

카드업계가 중소가맹점 수수료를 소폭 낮추고 우대적용 범위를 넓히겠다는 배경은 카드 수수료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해서다.

1만원 이하 카드결제 거부를 허용하는 방안이 무산되면서 이참에 수수료를 더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은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이 카드사 압박에 가세한 결과로 풀이된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에 손을 대지 않은 채 ‘이익이 났으니 수수료를 낮추라’는 단순 논리로만 접근해선 수수료를 둘러싼 카드사, 가맹점, 소비자의 ‘3각 갈등’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연회비도 내지 않고 소득공제와 포인트·할인혜택 등을 누리는 신용카드 사용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는 소비자에 비용을 전가해 소득분배가 왜곡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카드업계 “우리도 할말은 많지만‥”카드사들은 최근 정치권과 정부 그리고 가맹점들이 카드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는 데 대해 “경제 논리상 말이 안 되는데 정치 논리로 흐르고 있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7개 전업 카드사의 치열한 경쟁과 정부의 압력으로 이미 여러차례 수수료를 내려 수익성이 나빠지고 있는데, 또다시 수수료를 내리려면 기업이 장사를 접으라는 얘기와 같다는 것이다.

카드사들은 당기순이익이 2009년 1조8천643억원, 2010년 2조7천217억원으로 늘기는 했으나 카드대출 등의 요인이 크다고 반박했다. 반면 중소가맹점 수수료는 유지비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중소가맹점 수수료는 사실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수수료를 더 내리라는 건 회사더러 ‘자선사업’을 하라는 셈”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카드사 관계자도 “정부가 가계부채를 관리하려고 카드대출 규제 강도를 높인 데 이어 수수료마저 옥죄니 죽을 맛”이라며 “내년부터 카드사들의 건전성이 급격히 악화할 공산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여론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카드사들은 수수료 인하 압박에 냉가슴만 앓고 있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자는 마음에 중소가맹점 수수료를 조금 낮추고 중소가맹점 범위를 확대하는 선에서 ‘성의표시’를 하자는 분위기다.

카드업계에선 반발이 심한 음식업종의 수수료율을 현행 2.60%에서 1%대 후반으로 낮추고 중소가맹점 수수료율을 전체적으로 0.2%포인트 정도 인하하는 방안이 유력시된다. 수수료 인하 혜택을 보는 중소가맹점 범위도 전체 가맹점의 58%에서 70%로 확대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당국 “냉정히 따지면 문제 있지만‥”카드 수수료 논란을 촉발시킨 1만원 이하 카드결제 의무수납 완화 조치는 일단 무산됐다. 하지만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여신전문금융업법 19조를 언젠가 반드시 손을 봐야 한다는 의견은 여전하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처벌조항(카드결제 거부시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을 집어넣었지만, 실생활에선 오래전부터 카드결제 거부나 이중가격제가 왕왕 벌어지고 있을 정도로 사문화된 조항이기도 하다.

국회에 발의된 개정안과 가맹점의 요구를 절충해 1만원 이하는 카드결제 의무수납 범위에서 제외하려다 좌초된 배경은 결국 ‘국민정서법’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냉정히 따져보면 문제가 있는데, 지금은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대형가맹점과 중소가맹점의 수수료 격차를 발생시킬 뿐 아니라 카드 수수료를 무작정 낮추기 어려운 이유로 꼽히는 밴(VAN)사 수수료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밴사는 카드사·가맹점과 계약을 맺고 결제망과 단말기를 설치한 뒤 유지·관리하는 대가로 결제가 발생할 때마다 카드사로부터 일정 금액을 수수료로 챙긴다.

대형가맹점은 자체 시스템을 갖춰 하루치 결제를 몰아서 처리, 밴사 수수료가 낮아지고 자연스럽게 가맹점 수수료도 낮아진다. 중소가맹점은 밴사가 일일이 전표를 수거하러 다니는 등 처리비용이 많아 수수료도 높아진다.

그러나 국내 13개 밴사가 3만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문제 역시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로 여겨진다. 정부는 지난 2007년에도 밴사 수수료 문제를 건드리려다 접었다.

◇“‘신용카드는 공짜’라는 인식 버려야”카드 수수료를 둘러싼 문제를 풀려면 카드 사용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어떻게 공정하게 분담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게 당국과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카드사가 수수료 수입으로 이익을 내고 있으니 막무가내로 수수료를 낮추라는 식은 합리적인 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이익이 줄어들면 수수료를 올려도 괜찮다는 논리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카드 사용자가 지나친 혜택을 누리고, 그 부담을 가맹점이 떠안는 구조”라면서 “그럼에도 카드 사용의 혜택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인식돼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결제는 1개월에서 길게는 45일까지 ‘외상 구매’를 하는 것인데도 돈을 미리 당겨 쓰는 데 대한 비용은 전혀 부담하지 않은 채 오히려 소득공제, 포인트·할인혜택에다 결제 편의성까지 누린다는 것이다. 이 부담은 손님을 모셔야 하는 가맹점이 부담하면서 일부는 알게 모르게 가격에 반영됐다.

이 연구위원은 “문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할 수 없는 계층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점”이라며 “카드를 보유한 사람은 영화를 6천원에 보고, 그렇지 못하면 제값에 8천원 내고 보는 ‘역진적 소득분배’가 유발된다”고 말했다.

그는 “가맹수수료 인하는 신용카드의 포인트·할인혜택을 줄이고 소득공제를 없애는 ‘용기있는’ 정책과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국도 심정적으론 이 같은 주장에 동조하지만, 한편으론 소비자의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래서 들고 나온 게 직불형카드(체크·직불카드)로 점차 신용카드를 대체하는 방안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올해 말 발표할 카드시장 구조개선 종합대책의 핵심은 직불형카드 활성화가 될 것”이라며 “결제 편의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가맹수수료가 낮고 소득범위 내 소비를 유도하는 직불형카드가 신용카드보다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