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재발 우려에 유동성 확보 '비상'

2011-09-15 16:04

(아주경제 이재호 이수경 기자)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제2의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대기업과 금융권이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향후 도래할 수 있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신용경색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시중 유동성이 대기업과 금융권으로 몰리면서 중소기업과 서민들은 갈수록 돈 구하기가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 대기업 올 들어 60조 신규 조달

대기업들이 올해 들어 새로 조달한 자금 규모는 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2009년 조달액인 49조원보다 10조원 이상 많고 지난해 조달액 64조원에 육박하는 수치다.

대기업 대출 잔액은 18조원 증가해 지난해 전체 증가액보다 50% 이상 급증했으며, 회사채 발행(36조원)과 유상증자(4조5000억원) 등 직접금융시장을 통해서도 40조원 이상을 신규 조달했다.

대기업들이 자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유로존 재정위기가 점차 확산되면서 글로벌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닥칠 불황에 대비해 미리 현금을 쌓아놓겠다는 취지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경기침체로 경영수지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어 현금 보유를 높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조달 여건이 악화되기 전에 자금을 확보하려는 이유도 있다.

실제로 신규 기업대출 금리는 지난해 말 5.52%에서 올해 7월 말 5.98%로, 3년 만기 회사채(AA-) 금리는 4.17%에서 4.48%로 오르는 등 조달비용 상승세가 가시화하고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지금처럼 금리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조달비용이 오를 가능성이 있어 자금을 미리 확보한다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외화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지난달 말 12개 은행을 대상으로 실시한 외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상당 수 은행들이 테스트 기준에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돼 글로벌 신용경색이 현실화할 경우 은행들이 외화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를 의식한 듯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15일 서울 한 호텔에서 개최된 컨퍼런스에서 “하반기 들어 외환건전성을 위해 차입선을 다변화하고 단기차입을 중장기차입으로 돌리는 등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외화자금의 30% 가량이 유럽계 자금으로 위기가 닥치면 유럽계 자금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의식한 발언이다.

당국의 요구로 금융권은 ‘커미티드라인’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이 새로 확보한 커미티드라인은 25억 달러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 자금 양극화 현상 심화

대기업과 금융권이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는 반면 중소기업은 갈수록 돈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올 들어 중소기업이 조달한 자금 규모는 15조원 가량으로 대기업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금융권리 리스크관리를 이유로 중소기업 대출 취급을 축소하고 있는 데다, 회사채 발행 등 직접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역량도 대기업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난 1~7월 중소기업이 직접금융시장에서 조달한 자금은 1조80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7% 감소했다.

서민 가계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의 압박으로 은행 등이 가계대출 옥죄기에 나서면서 주택담보대출은 물론 일반 신용대출을 받기도 어려워졌다.

한 시중은행 임원은 “유럽발 위기가 어느 수준까지 확산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지금은 몸을 움추릴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과 가계의 돈가뭄 현상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