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재정위기 파국 치닫나

2011-09-06 12:42
주식·채권·CDS 등 시장 요동…리먼사태 재현 우려 확산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유럽 재정위기가 파국으로 치닫으면서 시장을 집어 삼키고 있다. 유럽 은행권의 숨통을 조여온 재정위기가 이탈리아에서 다시 고조되자 주가는 폭락하고, 부도 위험을 반영하는 재정위기국 국채 수익률과 크레디트디폴트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일각에서는 유럽 재정위기가 결국 리먼사태의 재현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스페인-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 추이(단위: %/출처: 로이터)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시가 노동절로 휴장한 가운데 유럽증시는 4~5% 폭락했다. 특히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가 12% 급락하고, 도이체방크와 소시에테제네랄이 각각 9% 추락했다. 크레디트스위스도 8% 밀리는 등 금융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채권시장도 요동쳤다. 10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 수익률은 5.56%로 27베이스스포인트(bp·1bp는 0.01%포인트) 급등했고, 그리스의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가 임박했다는 우려는 1년 만기 국채 수익률을 사상 최고인 82.1%까지 밀어올렸다. 10년 만기 스페인 국채 수익률도 14bp 오른 5.26%를 기록했다.

5년 만기 이탈리아 국채의 CDS 프리미엄도 이날 45bp 오른 445bp로 2009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새로 썼다. 만기가 같은 스페인 국채 CDS는 420bp로 30bp나 올랐지만, 사상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추월당했다. 국채 수익률과 CDS 프리미엄은 해당 채권의 부도위험과 비례한다.

이날 시장이 무너진 것은 쏟아진 악재 탓이다. 전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은 지방선거에서 참패했고, 정국 불안으로 재정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총파업 예고가 날아들었다. 특히 메르켈의 패배는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독일의 운신 폭을 제한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요제프 아커만 도이체방크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앞으로 수년간 은행들의 수익 성장을 저해하고 결국 가장 취약한 은행은 사멸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경고는 최근 곳곳에서 부각되고 있는 유럽 은행권의 신용경색 조짐과 맞물려 리먼사태의 재현 공포를 낳고 있다.

일례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미국 머니마켓펀드(MMF)들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은행권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를 대거 줄이고 있다고 보도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지난 주말 역내 은행들이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많은 1511억 유로를 예치했다고 밝혔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은행들이 자금 운용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로이터는 이날 주요 7개국(G7)이 이번 주말 열리는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유럽 재정위기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뾰족한 해법이 나올지는 미지수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