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르포] "한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어요"

2011-07-25 18:26
평범한 대기업 사원→막노동으로 생활비 벌고 경마 도박

(아주경제 이광효 기자) "경마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기 힘들어요."

긴 장마가 끝나고 한여름 무더위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는 지난 주말 서울의 한 한국마사회 지점 장외발매소를 찾았다.

찌는 듯한 무더위 속에서도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하루에 3000명이 찾는다.

장외발매소에서 만난 A씨(43·남)는 이날도 돈을 날려 속상해 했다.

A씨는 "오늘도 2만9000원어치 마권을 샀는데 돈만 잃었다"고 말했다.

A씨도 한때는 잘 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사회 초년병 시절이었던 지난 1995년부터 대기업 무역회사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1년 경마에 발을 들여놓은 후 그의 인생은 끝없이 추락하기 시작했다.

경마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잃은 돈만도 1억원 이상이다. 2004년 결혼도 했으나 2006년 이혼했다. 현재는 혼자 살고 있다.

A씨는 "1000만원 넘게 딴 적도 있지만, 눈먼 돈은 쉽게 쓰게 된다"고 말했다.

A씨는 현재 변변한 직업이 없고 막노동으로 생활하면서, 돈이 생기면 경마를 하고 있다.

A씨도 경마를 끊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A씨는 "무역회사에 다니던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며 "경마도박은 혼자서는 못 끊는다. 가족에게 오픈시켜야 한다. 가족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고 말했다.

경마도박은 장애인의 삶에도 파고들고 있다.

국민기초생활 급여(한 달에 30만~40만원)로 생활하고 있는 장애인 B씨(58·남)도 이곳의 단골 고객이다.

"큰 금액은 못하지만, 그래도 내 형편에 몇 만원도 부담스럽다"며 "경마를 끊고 싶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며 한숨지었다.
이 장외발매소는 장애인석 12석을 지정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실시된 국정감사 당시 한국마사회가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민 대상 대규모 도박 이용실태 조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민의 도박 참여율은 58.1%(2197만1000명)인데 경마는 2.1%(46만1000명)에 불과했다.

그런데 정신적 질환에 걸린 사람의 비율을 나타내는 '도박중독 유병률'은 경마의 경우 19.9%로 성인오락실 게임도박(33.4%) 다음으로 높았다.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경마가 폐해가 심해 국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면 없애야 하겠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아, 전세계 1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경마를 하고 있다"며 "긍정적인 면은 스트레스 해소와 레저로 인한 즐거움, 수익금의 사회 환원 등"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