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너경영에서 길을 찾다> 미래산업으로 승부수 띄운다
2011-05-31 18:00
(아주경제 이하늘·김형욱·이규진 기자)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011년 특별판을 통해 “경영환경이 어려운 시기에는 오너경영이 성과가 더 좋다”는 분석을 내놨다. 그리고 성공사례로 삼성과 월마트·BMW 등을 꼽았다. 그간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금과옥조’ 처럼 여기던 미국경제계에서 오너경영의 우수성을 인정한 것.
특히 벨렌 빌라롱가 하버드대 경영대학 교수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오너 경영 기업들은 전문경영인이 경영하는 기업보다 매출 신장세가 2%가량 높았고 시장 가치도 경쟁사 대비 6%가량 높다는 조사결과를 밝혔다.
이 조사는 미국과 유럽 기업 4000여 곳의 성과를 비교해 도출됐다. 빌라롱가 교수는 “오너경영 기업들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한다”며 오너경영의 장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창업주 일가의 책임경영이 재조명됐다. 오너경영을 펼치고 있는 기업들은 빠른 결단을 통해 급변하는 시장과 기술 트렌드를 이끌었다. 아울러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미래경영에 대한 투자에도 인색치 않았다. 전문경영인들이 3년 안팎의 임기동안 단기실적에 매몰된 것과는 상반된 움직임이다.
이 같은 오너경영의 대표주자는 한국 기업들이다. 대부분 일본 강점기와 한국전쟁 당시에 출범한 한국의 주요 기업들은 짧은 기간 동안 선진 기업들을 추격했다. 그리고 현재 전자·자동차·조선·건설 등 주요 산업 곳곳에서 우리 기업들은 글로벌 선두로 부상했다.
◇ 10년, 20년 뒤 미래 먹거리를 찾아라!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이에 만족치 않고 R&D 등 투자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고 있다. 기업과 한국경제의 10년, 20년 후 지속가능한 발전 동력을 찾기 위해서다.
먼저 삼성은 올해 투자규모를 43조1000억원으로 늘렸다. 시설투자 비용은 지난해(24조9000억원)대비 20% 증가한 29조9000억원이다. 2009년(11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R&D 역시 작년 10조6000억원에서 14% 증가한 12조1000억원을 집행한다.
지난해 5월에는 태양전지, 전기차용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확정하고 2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건희 회장 복귀 이후 본격적인 미래경영이 시작된 것.
현대기아차그룹은 최근 수년간 해외 생산시설 확충에 고삐를 죄고 있다. 글로벌 위기로 경쟁사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오히려 리더십을 확대하고 있는 것.
지난해 9월 연산 15만대 규모의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한 데 이어 같은 해 12월 중국 베이징에 중국 3공장을 착공했다. 연산 30만대 규모인 이 공장이 완공되는 2012년에는 현대차의 중국 생산규모는 총 100만대, 기아차 포함 141만대로 늘어난다.
올 초 착공한 연산 15만대 규모의 브라질 공장은 남미 시장 확대의 거점이다. 역시 2012년 완공 예정이다.
올 4월에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 시장 분석을 위해 베이징에 자동차경영연구소를 발족했다. 유럽·미국·중국 등 세계 주요 시장에 연구개발(R&D) 센터를 두고 있지만 연구소가 들어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자동차 외에도 자원개발을 통해 지속성장을 준비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미래전략본부에 자원개발팀을 만들고, 현대건설에 자원사업 태스크포스(TF)팀을 신설, 그룹 차원에서 자원개발 사업에 뛰어든다는 계획이다.
LG도 구본무 회장의 뚝심경영이 성과를 거두고 있다. LG화학은 1992년부터 20년 가까이 2차전지에 투자를 진행했다. 10년 넘게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내부에서 사업철수에 대한 목소리가 불거졌지만 구 회장은 2차전지 사업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그 결과 LG화학은 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에 이어 △에너지 △리빙에코 △헬스케어 등 3개 부문을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확정하고 여기에 올해에만 1조원을 투자한다. 이밖에 R&D 부문에는 역대 최고인 4조7000억원을 투입한다.
◇창업주 시절, 빠르고 강한 미래투자
이같은 오너중심의 중장기 미래 투자는 비단 최근의 일이 아니다. IMF 이후 한국경제 성장이 동력이 된 반도체 산업은 역설적이게도 태동 당시 정부와 언론, 재계의 강력한 반대 속에서 시작됐.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은 1983년 도쿄선언을 통해 메모리 산업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비판적 인식을 잠재우는데 공을 들였다. 그 결과 반신반의 속에서 시작한 삼성의 메모리반도체는 10년 후인 1993년 는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2011년 현재까지 20년 가까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1947년 락희화학을 모태로 시작한 LG 역시 기존 화장품 사업에서 점차 사업을 확장했다. 1958년에는 한국 최초의 전자공업회사인 금성사를 창립했다. 구인회 LG 창업주는 기존 화장품.생활용품 등에 머물렀던 한국의 제조산업이 첨단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창업주 당시부터 시작한 새로운 시장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유전자가 2세, 3세 경영진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 재계 고위 관계자는 “오너경영을 단순한 핏줄에 따른 유산 상속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며 “어린 시절 창업주들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것을 곁에서 함께 경험한 후대들은 의식·무의식적으로 선친의 역량을 이어받아 한국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