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고삐 풀린 위험한 미디어 서커스

2011-05-25 10:26
박화영(미디어 작가겸 출판사 대표)

얼마 전 한 방송 뉴스에서 처남이 매형을 각목으로 내리치고 발로 걷어차 때려죽이는 CCTV 장면을 보도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자본의 권력에 의해 좌지우지되기 쉬운 시청률 등에 연연할 수 밖에 없는 방송미디어가 선정적 자극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겠지만, 요즘 들어서는 아주 대놓고 해보겠다는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나고있다.

각종 드라마나 쇼 오락 프로그램은 물론이거니와 사실의 냉정한 보도를 전하는 뉴스에서 조차 미디어 서커스에 맞장구를 친다. 이른바 시청자의 알 권리를 내세워 보다 충격적이고 자극적 방식으로 대중들의 동요를 일으키며 보도를 하려는 저의가 훤히 드러나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연예중계 방송에서나 다뤄져야 할 것 같은 연예인 스캔들 기사나 인기 연예인 군대 간 이야기를 엄청난 방송시간을 할애하여 선정적으로 보도하고, 폭력성을 고발하는 보도에 폭력적 장면을 방영하는 폭력적 패러독스를 일삼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때로는 뉴스에는 굳이 불필요할 것 같은 감상적 배경음악까지 깔아주며 “분위기”를 조성해주기도 한다.

이제는 아나운서 신입사원을 리얼리티 서바이벌 형식 연예 버라이어티 쇼 프로그램을 통해 선발하고, 뉴스보도국 아나운서들이 연예오락 프로그램 등에 경쟁적으로 출연하며 소위 친근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며 코미디언보다 더 웃기면서 대중의 인기를 받기도 한다. 물론 뉴스 진행자들이 시청자들과의 교감을 생각하며 대중과 가까이 가려는 노력이라며 이런 접근을 좋은 시도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같은 미디어 서커스 환경 속에서 사회적 양심과 책임을 사명감으로 갖고 현실을 치열하게 보도하는 본연의 저널리즘 정신이 오락적 선정적 쇼와의 모호한 경계선을 공유하기 시작한다는 것은 눈 앞에 펼쳐진 불편한 사실이다.

우리가 사는 오늘의 미디어 환경은 선정적 자극적 지뢰밭이다. 뉴스포탈을 포함한 많은 포탈 사이트의 사이드바 광고들 및 “낚시질”을 위한 기사들의 선정적 수위는 역겨울 지경에 이르렀다. 단순히 정보나 뉴스를 검색하기위해 보고싶지 않은 민망한 선정적 사진들이 도배된 것을 볼 수 밖에 없는 미디어 환경은 과히 폭력적이다.

흔히 이런 환경이 성장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미치는 유해성을 문제 삼지만, 성인인 나도 제발 그런 “후진” 환경으로부터 보호 받고 싶다. 눈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값싸고 빠른 이윤을 축적하기 위해 자극적 미끼를 도처에 뿌리고 덫을 놓아 생각 없이 말초적 자극에 쾌감을 느끼도록 유도한다. 미디어 서커스 홍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대인들은, 소모적으로 유희적 향락적 소비를 조장하는 권력과 자본의 조정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로 취급당하고, 사유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 당하기 쉽다.

얼마 전에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당한 시신의 사진의 공개 여부를 두고 논쟁거리가 되었었다. 유언비어를 막고 사망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잔혹하게 사살된 이미지가 보복테러를 낳을 것이라 보도 말아야 한다는 대립의견이 나오고, 심지어는 나중에 합성 조작된 것으로 판명된 피범벅이 빈 라덴의 사체사진이 사살 당일 바로 세계 뉴스에 보도가 나가고, 나아가 그의 사체사진을 담았다는 제목을 미끼로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스팸메일까지 극성을 부렸다.

일단은 미 정부는 공개하자는 쪽의 CIA 의견을 따르지 않고, 일부 미 연방 상원의원들에게 비공개로 사진을 보여 “끔찍하게 사살당한 묘사” 만을 언론에 풀었다. 여기에서 내가 짚고 싶은 논점은 과연 미국이 사진을 공개 혹은 비공개 하는 여부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한 사람이 권총으로 사살당한 장면을 미디어에 공개할까를 고려하는 자체가 끔찍스럽다. 당사자가 얼마나 악하고 폭력적이고 반인류적 인간이었는지의 여부를 떠나 한 사람이 잔혹하게 죽은 이미지를 공공미디어에 도배하는 일은 폭력적 횡포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미디어는 알 권리와 볼 권리를 충족시켜준다는 사명감을 생색내며 온갖 선정적 폭력적 이미지와 자극적 기사들을 전파하고 싶어하지만, 안 볼 수 있는 권리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강하게 주장하고 싶다. 때로는 외치고싶다. “보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