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정책, 시장과 소통하라

2011-05-22 17:37

송계신 금융부국장

이명박 정부 들어 ‘소통’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많이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이해 당사자 사이에 같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는 뜻일 것이다.

세종시, 4대강 사업 등 굵직한 국책사업은 물론이고 국민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책에서도 깊은 갈등의 골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정책에서는 시장과 교감하지 않는 일방적인 모습도 엿보인다.

외국환은행에 대한 선물환포지션 한도 규제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정부는 지난 19일 외환시장안정협의회를 개최하고 자기자본 대비 외국환은행의 선물환포지션 한도를 현행보다 20% 축소하기로 했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의 한도를 현행 250%에서 200%로, 국내은행의 한도는 50%에서 40%로 각각 줄이겠다는 것이다.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줄여 환율 안정을 꾀한다는 취지이지만 실질적인 목표는 원화 강세를 막아보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외환시장에서는 정부의 의도와 정반대로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며 원화가 강세를 보였다.

이날 정부의 정책 결정은 시장의 흐름과 전망을 완전히 무시했거나 최소한 간과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원화의 강세는 미국 달러가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에서 당연한 흐름이다.

유로존의 재정위기나 미국의 경기회복세 위축이 예측되면서 원화를 포함한 아시아통화는 상당기간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해외 투자은행(IB)들은 한국경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바탕으로 원화를 주요 투자대상으로 꼽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가 강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원화의 투자 매력이 높아질수록 환율 하락(원화 강세) 속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달러가 주요 통화에 대해 광범위하게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 한국 외환시장에서만 달러가치를 끌어 올리려는 정책은 매우 위험하다.

정부의 환율 정책 의지와 방향이 시장에 잘못 전달되면 정책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

심지어 시장에 역행하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경우 투기자금을 끌어들여 불필요한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정부는 달러의 약세 기조가 대세임을 인정하고 어느 정도 원화 강세를 용인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올해 물가 상승이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원화값 상승은 수입물가를 낮추는 순기능도 적지 않다.

특히 달러 값이 떨어지면 원자재 등 국제 상품가격이 올라가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달러가치 하락과 원자재 값 상승에 대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뜻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는 22일 ‘2011년 상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원화 강세를 기정사실화 하고 올해 원화 가치가 평균 4~5%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KDI는 또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1%로 크게 올리고 금리도 연 4% 내외로 인상할 필요성을 지적했다. 현재 기준금리가 적정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3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3.0%로 동결해 시장에 충격을 가했다. 전문가들은 당시 한은이 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가 뒤통수를 맞았다.

사실 한국경제의 성장률과 물가 수준을 감안하면 지금의 기준금리는 낮다.

전문가들도 물가상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에서 금리 인상 등 더욱 적극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콜금리는 3% 수준인데 비해 명목성장률은 4%를 웃돌고 있기 때문에 기준금리를 정상적인 수준인 4%를 웃돌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은 ‘물가 안정’이라는 통화정책의 주된 목표와 정책의지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신뢰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외환 당국은 수출기업의 경쟁력에만 매달리다 외환시장의 흐름을 왜곡하는 정책을 더 이상 집착해서는 곤란하다.

정책 당국자들은 당장 우물안 개구리가 바라보는 시각을 접고, 세계적 관점에서 국내 시장과 소통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