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중이염 자살’ 훈련병 인권 침해 있었다”

2011-05-18 09:36
국방장관·훈련소장에 책임자 조치 및 제도 개선 권고

(아주경제 장용석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지난 2월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발생한 훈련병 정모(21)씨 자살사건과 관련 “훈련소 측의 관리부실과 치료미흡 등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며 국방부 장관 및 훈련소장에게 관리책임자에 대한 상응 조치 및 제도 개선 등을 권고했다고 18일 밝혔다.
 
 올 1월 입대한 정씨는 훈련소에서 중이염 증세를 호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권위에 따르면, 이후 정씨의 외삼촌 강모(50)씨는 지난 3월 “조카가 훈련소에서 훈련받던 중 중이염 증세로 민간병원 진료를 요구했지만 소대장 등이 꾀병으로 의심해 폭언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상실감과 절망으로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됐고, 사망 당일 신속한 응급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정을 인권위에 제기했다.
 
 이에 대해 훈련소 측은 강씨의 진정에 대해 “피해자 질병 치료를 위해 총 9차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고, 이때 ‘중한 질병이 아니다’는 군의관 소견에도 피해자가 민간병원 진료를 요구해 질책하긴 했으나 폭언을 한 사실은 없었다”고 밝혔다. 또 훈련소 측은 “입소 초기 피해자에겐 특별한 이상 징후가 없어 보호관심사병으로 지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사망 당일 피해자를 발견한 당직근무자들은 “피해자가 이미 사망해 응급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피해자의 편지·메모, 피진정인·참고인 진술, 의무기록지·처방전 등 의료기록, 훈련일지, 당직근무일지, 부검감정서 등을 종합 조사한 결과, “피해자의 질병에 대한 군의관의 의료 조치·처방에 특별한 문제를 확인할 순 없었다”면서도 “피해자의 지속적인 민간병원 진료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적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권리를 침해당했고,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훈련소 생활에 적응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관리책임자인 소대장이 지난 2월21일 피해자를 국군대전병원에 외진 보내면서 사전에 이뤄진 8차례의 훈련소 내 병원·의무실의 진료 기록을 전달하지 않아 대전병원 군의관은 이명 증상에 대해서만 처방했다”는 게 인권위 측의 설명이다.
 
 또 인권위 조사에선 피해자 사망 전날인 2월26일 피해자가 다시 증상을 호소하며 의무실 및 민간병원 진료를 요청하자, 소대장이 “왜 자꾸 시키는 대로 안하고 떼를 쓰냐. 똑바로 서! 야! 인마! 이 새끼야! 군의관이 문제없다고 하는데 왜 자꾸 가려고 해. 너 앞으로는 귀 아픈 것으로 외진 갈 생각 하지 마!”라는 등의 부적절한 언행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인권위는 “지휘관들의 감독 및 신상관리 소홀, 민간진료 요청에 대한 폭언 등 행위는 결과적으로 피해자 사망을 예방하거나 보호하지 못하고 절망감과 상실감을 유발해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한데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며 특히 “이는 ‘군인복무규율’ 규정한 지휘관 및 상관의 지도·감독 및 부하의 고충 파악·해결 주의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사고당일 피해자 발견시 병원 당직자들이 응급구조인력을 보내지 않고 일반의무병을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면서 “이는 사고자 발견시 소생시키기 위한 응급조치가 매우 중요하고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전문적 판단에 의해 응급조치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육군훈련소장에게 △피해자에게 폭언하고 관리를 소홀히 한 관련자들에 대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고, △상급병원 외진시 관련 의료기록 송부 의무화 △보호 관심사병 지정·관리 등에 관한 세부 계획 수립 △응급환자 발생시 조치·진료에 관한 제반 사항 정비 등을 권고했다. 또 국방부 장관에겐 △육군훈련소 내 병원에서 민간병원 진료 여부에 대한 진단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훈련소에 병영생활 전문 상담관을 적정 수준으로 배치할 것 등을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