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시대 다시 오나> 깊어가는 달러화 불신…중앙銀 금사재기 본격화

2011-05-15 18:17
전체 외환보유액 11.1% 2만7239.9t 금고에<br/>올 들어 멕시코·태국 등 신흥국 매입 늘려<br/>일각선 "금본위제 돌아가야" 주장도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중앙은행들의 금 사재기가 본격화하면서 일각에서는 '금본위제(골드스탠더드)'로의 회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중앙은행들이 골드러시를 본격화한 것은 2007년 이후부터다. 금융위기를 맞아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가치가 흔들리자 각국 중앙은행들은 2007년부터 금 매도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지난해 22년 만에 처음으로 금을 순매입했다.

◇신흥국 주도, 중앙銀 20년만에 금 순매입
세계금협회(WGC)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인용해 지난 12일 낸 자료를 보면, 세계 1위 금 보유국은 미국으로 이달 현재 8133.5t을 보유하고 있다. 전체 외환보유액 가운데 비중이 74.6%에 이른다. 이어 독일이 3401t(70.8%)으로 2위에 올랐고, 2814t을 보유한 국제통화기금(IMF)에 이어 이탈리아(2451.8t·69.2%)와 프랑스(2435.4t·64.9%)가 뒤따라 4~5위를 차지했다.

이어 중국(1054.1t·1.6%) 스위스(1040.1t·17.1%) 러시아(811.1t·7.5%) 일본(765.2t·3.2%) 네덜란드(612.5t·57.9%)가 차례로 6~10위에 올랐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전체 외환보유액의 11.1%에 해당하는 2만7239.9t의 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1분기(2만7096t)에 비해 0.5% 늘어난 것이다.

시장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이 실제 보유한 금은 IMF에 보고한 수치보다 10% 이상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WGC는 중앙은행들이 보유한 금 규모는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일부 신흥국들이 두드러진 매수세를 나타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멕시코다. 멕시코는 지난 2월과 3월 각각 14.8t, 78.5t의 금을 매수했다고 IMF에 보고했다. 이는 최근 시세로 45억 달러 어치, 연간 전 세계 공급량의 3.5%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두 달 새 100t에 달하는 금을 사들인 멕시코는 전체 보유량 100.2t으로 단번에 금 보유 순위 32위로 올라섰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보유 외환의 운용 다변화를 위해 금 보유 비중을 크게 늘렸다고 밝혔다. 멕시코의 외환보유액은 2007년 1분기 750억 달러에서 지난 1분기 1200억 달러로 60% 급증했다.

태국도 지난 2월 9.3t의 금을 추가로 매입했다. 지난해 7월 15t을 사들인 후 처음이다. 이로써 태국이 보유한 금은 108.9t으로 늘었다. 러시아도 지난 1~3월 사이 22.5t의 금을 더 샀다고 IMF에 보고했다.

◇달러화 급락…"믿을 건 금뿐" 금 사재기 속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멕시코의 금 사재기는 최근 신흥국에서 일고 있는 보유외환 다양화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달러화 가치가 추락하자, 신흥국들이 달러화 비중을 줄이는 대신 가치불변의 금 보유 비중을 크게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FT는 최근 수년간 중국, 러시아, 인도도 상당량의 금을 매입했으며 태국, 스리랑카, 볼리비아 등도 일정량의 금을 사들였다고 전했다.

금값이 연일 치솟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FT는 지적했다. 금값은 최근 1년간 32% 오르며 지난달 무려 13차례나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영국 귀금속 투자 컨설팅업체 GFMS는 최근 낸 보고서에서 "금시장이 전환 국면에 도달했다는 우려는 시기상조"라며 올해 금값이 평균 온스당 1455 달러, 연말까지 최고 1600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멕시코가 금을 대거 매입한 덕분에 전 세계 중앙은행, 국부펀드 등 공적부문의 금 매입 규모는 달러화 가치를 금에 묶어뒀던 브레튼우즈 체제가 1971년 무너진 이후 기록적인 수준으로 늘었다.

앞서 GFMS는 올해 공적부문의 금 순매입 규모가 240t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 회사의 필립 클렙위크 회장은 "멕시코 중앙은행의 행보를 감안하면 이 수치는 결국 보수적이었다는 게 판명날 것"이라며 공적부문이 1981년 기록한 사상 최대 금 순매입 규모인 276t을 올해 경신할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FT는 중앙은행들이 20년 만에 금 순매수 세력으로 떠오른 것은 달러화와 미 국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것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 가치는 올 들어 전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10% 추락했으며, 사상 최저치에서 거래되고 있다.

◇환율·달러화 안정…"금본위제 회귀해야"
달러화의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자 일각에서는 금본위제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보수성향이 짙은 유타주(州)가 지난 3월 금화와 은화를 법정화폐로 쓰자는 법안을 승인하기도 했다.

금본위제 회귀 논쟁을 본격화한 이는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다. 그는 지난해 11월 FT 기고문에서 "선진국들은 이제 금본위제를 재도입하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20개국(G20)이 선진국과 신흥국 진영으로 나뉘어 벌이던 환율전쟁이 격화되자 졸릭은 G20이 상호 협력할 수 있는 통화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게 달러·유로·엔·파운드·위안화로 통화 시스템을 구축한 뒤 금을 가치의 기준으로 삼자는 변형된 금본위제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의 발행인인 스티브 포브스도 최근 한 보수성향 온라인 매체에서 "지금 당장은 깜짝 놀랄 일이 머잖아 사회적 통념이 되는 일이 적지 않다"며 "미국이 5년 안에 금본위제로 회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일정량의 금을 기준으로 달러화 가치를 묶어 두면 미 정부의 재정지출이 줄고,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도 달러화를 마구 찍어 낼 수 없어 달러화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의 보수유권자단체 '티파티' 지도자로 지난 주말 대선출마를 공식선언한 공화당의 론 폴 하원의원(텍사스)도 대표적인 금본위제 옹호론자다. 그는 1980년 쓴 '금으로 말하자면(The Case for Gold)'에서 지난해 낸 '연준의 종말(End the Fed)'에 이르기까지 줄곧 연준 시스템에 반대하며, 금본위제로의 회귀를 주장해왔다.

USA투데이는 폴의 출마 선언으로 미 대선 캠페인에서 금본위제 회귀와 관련한 논쟁도 주목해야 할 이슈가 됐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