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승준 "연기금으로 대기업 견제" 파장 일파만파
2011-04-27 08:10
(아주경제 장용석 기자) “정부가 관료적이라지만 대기업들이 더 거대 관료주의에 빠져 있다. 이미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은 스스로 혁신 능력이 없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이 또 ‘사고(?)’를 쳤다.
곽 위원장은 26일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및 지배구조 선진화’를 주제로 열린 미래위 주최 토론회에서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주장하며 대기업들에 직격탄을 날렸다.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 등에 대해서도 정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보다는 공적 연기금이 보유한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접근하는 게 효율적이다”는 게 곽 위원장의 주장이다.
곽 위원장의 주장에 당장 재계가 발끈하고 나섰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등 경제단체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점차 비중이 커지는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 목적은 상장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자체가 아니라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가치극대화에 있어야 한다”며 “지나친 경영권 간섭은 경영안정화를 훼손해 기업가치 저하로 연결되므로 지양해야 한다”고 밝혔다.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에 앞서 국민연금 지배구조 개선과 의결권 행사를 위한 구체적 지침이 필요하다는 게 전경련 측의 입장이다.
황인철 한국경영자총협회 황인철 본부장도 “공적연금이 보유한 주주권을 활용해 기업을 뜻대로 하겠다는 건 ‘연금사회주의’와 같다”며 “시장경제 시스템 아래에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측도 “기업의사결정에 공적연기금이 개입하면 효율적인 의사 결정에 지장을 주며 기업가치 하락도 우려된다”며 “기업가치가 떨어져 연금이 덜 걷히면 결국 손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재계의 반발이 확산되자 청와대도 “곽 위원장의 주장은 청와대와 사전 협의한 사항이 아니다. 곽 위원장이 평소 학자로서의 소신을 발표한 것으로 안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김 대변인은 “곽 위원장의 주장은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사안이며, 앞으로 논의과정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본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보고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 대변인은 또 “정부나 청와대는 정리된 입장을 발표하지만 위원회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제기하는 기능을 한다. 오늘 토론도 다양한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고 곽 위원장의 발언이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전문가들 사이에선 “곽 위원장이 최근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일부 비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군기잡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곽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주장이 개인 의견임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론 정부의 공적 연기금 주주권 행사에 아무 문제가 없다”며 이를 현실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임을 거듭 밝혔다.
곽 위원장은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대통령 재가도, 법 개정도 필요 없다”면서 “많은 경제학자, 국회의원들도 내 의견과 다르지 않은 만큼 법적으로 보장된 의결권을 행사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관치(官治) 금융’이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선 “공무원이 아니라 금융 전문가들이 주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므로 관치가 아니다”며 “금융 전문가들이 금융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펀드 자본주의를 하자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그동안 공정사회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이 권고 차원이었다면 연기금을 동원한 대기업 견제는 직접적인 강압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연강흠 연세대 교수도 “소액주주로서 해결이 안 되는 것을 연기금이 나서겠다는 것은 주주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정치력이 개입되면 기업압박 또는 ‘경영자 길들이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