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업계, 유통업체 파워에 눌려 ‘노심초사’

2011-03-24 16:00
-유통중심문화, 글로벌 리더십 약화로 이어져<br/>-불합리한 가격정책…소비자에 피해전가

(아주경제 이하늘 기자)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기업은 물론 해외 전자기업들이 나날이 커지는 전자유통기업의 파워에 눌려 고심중이다.

국내 한 전자업계 마케팅 담당자는 “최근 유통업체들의 가격인하 압박이 도를 넘었다”며 “근래들어서는 가격결정권 뿐 아니라 제품의 사양, 기능에 이르기까지 참견하면서 본말이 전도됐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월권의 폐해는 이웃인 일본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일본은 수많은 글로벌 전자기업들이 있지만 리더십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일본 기업들의 부진은 국내 시장에 매몰됐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국내 내수시장만으로도 충분한 수익이 가능한 일본 전자기업들이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기 보다는 국내 유통업체들의 구미에 맞는 가격과 제품만을 개발하는데 주력했다. 유독 콧대가 높은 일본 유통업체들에게 휘둘리면서 글로벌 트렌드를 놓친 것.

실제로 글로벌 TV시장에서 LG전자와 2, 3위를 다투고 있는 소니는 일본 점유율이 9.7%로 4위로 처져있다. 글로벌 시장에 대응하면서 내수시장에서 열세를 보이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난해 일본 TV시장에 진출한 LG전자 역시 아직은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무리한 가격인하를 요구한 일본 현지 1위 유통업체와 계약이 이뤄지지 못한 것도 가장 큰 원인이다.

중국에서도 유통업체들의 입김이 거세다. 실제로 중국 가전시장은 현지 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다. TV 시장 역시 하이센스 등 현지 5개 기업이 7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 기업들은 중국 유통업체 특유의 텃세와 저가제품 요구에 미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들어 국내 유통점 가운데 일부가 임의로 공급가 이하로 가격을 내려 소비자들에게 판매하고선 전자기업들에게 손실액을 보존해 줄 것을 강요하고 있다”며 “점유율 경쟁 때문에 이같은 요구를 외면하기도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내 전자기업들은 자사 직영점·대리점에 납품하는 제품과 유통점 제품에 각기 다른 부품을 사용하는 등의 편법을 사용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휴대폰 역시 이동통신사들이 요구하는 사양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원하는 기능과 다소 거리가 있는 모델을 출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울러 단말기 보조금 지급 압박까지 벌어지면서 기존 원가보다 비싼 출고가를 책정하기도 한다.

이같은 보조금 정책을 잘 모르는 고객들은 비싼 가격에 제품을 구입하는 피해를 입고 있지만 이에 대한 개선에 대해서는 이통사와 제조사 모두 입을 다물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자제품은 출고가와 실제 판매금액의 격차가 크지만 이같은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어 이같은 구조를 모르는 고객들만 피해를 보게 된다”며 “이는 국내외 유통사의 힘이 커지면서 전자업체들이 이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