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범의 생트집> 영구도 없고, 웃음도 없고…

2010-12-29 11:17
<김재범의 생트집> 영구도 없고, 웃음도 없고…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괜한 시비가 아니다. 아니 괜한 시비 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언론계 종사자로서, 또 신생매체의 영화 담당기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소회를 올릴 공간과 자격 정도는 누려도 된다고 생각한다. 김재범의 ‘생트집’. 까닭이 있든 없든 기자의 생트집은 전적으로 독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필자 주>

 



개그맨으로 시작했다. 이후 전설이 됐다. 국내 슬랩스틱계의 일인자로 불리며 수많은 패러디를 만들어낸 ‘영구’의 또 다른 이름 ‘심형래’가 돌아왔다. 그가 택한 길은 또 다시 영화다.

2007년 할리우드 진출작 ‘디 워’가 논란의 중심에 서며, 수많은 비난을 온몸으로 견뎌낸 그다. “개그맨이 영화를?” “역시 개그맨이다” 당시 그를 향한 비난은 대충 이랬다. 그리고 3년이 지났다. 영화 인생동안 유난스럽게 고집한 ‘괴수’가 아닌 주특기인 코미디로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여러 언론은 앞 다퉈 그의 신작에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고전을 면치 못한 영화 사랑에 분신이나 다름없는 ‘영구’를 내세웠으니 결과에 눈길을 줄만 했다. 그리고 지난 27일 뚜껑이 열렸다. 사설이 길었다. 개인적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란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심 감독의 가장 큰 판단 미스는 대중들의 트렌드를 예측하지 못한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 태생으로 ‘영구’를 기억하는 영화팬이라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땜통 가발에 헐렁한 한복, 국민적 유행어인 “영구 없다”. 분명한 것은 그의 할리우드 차기작 ‘라스트 갓파더’엔 영구가 나오지만 영구는 없었다.

생경한 느낌의 2:8 가르마와 어설픈 단답형 영어 대사까지는 새로운 트렌드로 봐줄만하다. 80년대 초반 안방극장을 초토화시킨 ‘넘어지고’ ‘자빠지고’를 21세기에 재탕을 하니 영구는 더 이상 영구로서의 힘을 잃어버린 채 안쓰럽기까지 했다. 미국식 웃음 코드로 보기에도 영 아니었다. TV만 틀면 24시간 인기‘미드’가 쏟아지는 세상 아닌가. 높아진 보는 눈을 채워주기엔 함량 미달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심형래의 개그를 경험한 30대 관객조차 지금은 언어적 유희와 스탠딩 개그에 몸이 길들여진 상태다. 영화 내내 반복되는 영구의‘몸 개그’는 웃음이 아닌 하품만을 쏟게 만들었다. 웃음조차 “옛것이 좋은 것이여”를 외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지금은 분 단위 혹은 초 단위로 세상이 바뀌는 21세기다. ‘더 웃기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았다’는 영화 카피는 영구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심 감독을 유독 괴롭힌 스토리의 부재도 이 영화는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대부’와 ‘로미오와 줄리엣’ 스토리를 적절히 버무려냈다. 하지만 군데군데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장면이 숱하게 나온다. 흡사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처럼 영화적 환상에 휩싸인 처연함이 가득했다. “영화를 만든 사람이 또 심형래이기에 갖는 선입견의 장벽 아니냐”며 꼬집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심 감독 스스로가 매번 영화를 제작할 때마다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발언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만한 소재는.” “한국에만 있는.”

스토리 보다는 소재와 콘텐츠에 집착한 그의 영화 제작 방식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점이다.‘디 워’ 논란 당시 그는 ‘이무기’에 대한 집착과 함께 한국에만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란 언급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라스트 갓파더’ 역시 자신만이 할 수 있고, 자신만이 해야 하는 영구에 집착한 나머지 스토리가 허술해지는 불가분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무엇보다 올해 54세인 심 감독이 연기한 영구에게 도대체 몰입이 안된단 사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다. 화면 가득 자글자글한 주름살이 퍼진 얼굴로 하비 케이틀에게“파더”를 외치는 장면에선 “대체 이게 뭔가”란 생각외엔 도무지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심 감독이 ‘브라더’를 ‘파더’로 착각한 것은 아닐까.

적어도 기자가 본 ‘라스트 갓파더’는 이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