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하도급 문제는 하도급 법령으로 해결해야

2011-02-09 10:24

최민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건설정책연구실장
만약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데 집주인이 용역업체와 계약한 상태에서 용역업체 인력들에게 직접 일당을 나눠 주거나 집주인이 일부 인력을 직접 공급하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 또 고가사다리차를 집주인이 직접 계약해서 공급하도록 강제하면 어떻게 될까?

고가사다리차 수배를 용역업체에 일임했다면 지속적인 비즈니스 협력관계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늦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집주인이 고가사다리차를 직접 선택해서 계약을 체결했다면 양 당사자는 일회성 관계일 확률이 높고 그만큼 약속을 소홀히 할 우려도 높다. 또 작업인력을 집주인이 직접 수배할 경우에는 작업원 간에 처음 호흡을 맞추면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산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용역업체에서 나온 책임자도 처음 보는 관계인데 의사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 당연히 이사에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지고 물품 파손도 증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책임을 분산시킨 상태에서 이사가 늦어졌거나 집주인이 수배한 작업원의 실수로 물품이 파손된 경우 용역업체에게 모든 배상 책임을 요구한다면 대부분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합리한 현상이 최근 공공건설현장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더구나 하도급 공종의 분리발주가 증가하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건설공사 가운데 전기공사와 정보통신공사 등은 발주자가 따로 떼어 내어 직접 발주한다. 이 때문에 골조공사가 완료된 후에 다시 콘크리트를 부스거나 천정을 뜯어내고 전기나 통신 배선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한다. 공사를 착수했는데 폐기물처리업자가 아직 선정되지 않아 폐기물이 적체되어 공사 진행이 어려운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청에서는 한 동안 폐지됐던 관급자재 제도를 부활했다. 100여종에 달하는 자재를 발주자가 직접 구매해주다 보니 나중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 발주자 책임인지 시공자책임인지 애매한 경우가 늘어난다. 최근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계약자 공동도급’이라는 제도까지 등장했다. 공사를 총괄책임지는 종합건설업체와 일부 시공을 담당하는 전문업체가 동등한 자격으로 공동도급을 하는 체제이다. 종합건설업체가 시공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하자는 공동책임을 지라는 해괴한 논리가 성립된 것이다.

무릇 하도급업체나 자재업체 보호, 기능인력 보호는 매우 중요한 정책적 과제이다. 그러나 군대에서 하사관이나 사병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서 소대장의 지휘권까지 박탈하는 사례는 없다. 최근의 분리발주나 주계약자 공동도급 등은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하사관의 임명권이나 평가권을 본부에서 가져간 상태에서 전투 패배에 대해서는 소대장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꼴이다. 전투가 제대로 이루어질리 없다.

또 이러한 제도들은 글로벌스탠더드에도 부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주계약자 공동도급 연구를 담당했던 모 교수가 전 세계를 뒤져 유사한 모델을 찾으려 했으나 그러한 제도는 없는 것으로 결론짓기도 했다. 전기공사나 정보통신공사 등의 분리발주도 외국에서는 거의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이다. 설령 존재하더라도 발주자 입장에서는 총 공사비가 증가되기 때문에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원·하도급 문제는 하도급 관련 법령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상습적으로 부당한 하도급이나 임금 체불 등을 자행하는 업체에 대해서는 강한 패널티를 부과하고 하도급계열화를 촉진해 원·하도급 관계가 우수한 업체를 시장에서 우대해야 한다. 원·하도급 문제를 발주방식이나 입찰 제도로 해결하려는 것은 공사 이행이나 부실공사에 대해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또 다른 문제를 잉태하게 된다. 전투를 담당하는 최일선의 소대장에게 지휘권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