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살처분 여주농장, 돼지 비명소리만…
25일 구제역 의심 신고가 접수돼 예방적 차원에서 살처분이 결정된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석우리 S농장.
26일 오전 11시 이 농장에서는 돼지 2100두에 대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도로에서 농장으로 향하는 진입로에는 여주군청 공무원 6명이 나와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한 채 200여m 너머 농장의 살처분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제대로 보이지 않아 도롯가에서 망원렌즈 카메라로 바라본 살처분 현장은 멀리서도 참혹한 분위기를 그대로 전해주는 듯했다.
짙은 회색 방역복을 입은 공무원 30여명이 축사로 보이는 파란색 지붕 건물에서 돼지들을 몰고 30여m 아래 구덩이로 몰고 내려왔다.
이 구덩이는 구제역에 걸린 가축을 묻기 위해 보통 5m 깊이로 땅을 파고 나서 비닐과 생석회를 깔아 놓는 곳이다.
축사에서 구덩이로 향하는 길 양옆으로는 공무원들이 서서 돼지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파란색 천을 허리 높이까지 들고 돼지들을 몰았다.
영문도 모르고 죽음의 길로 향하던 돼지들이 주춤거리고 멈춰 서면 공무원들이 나뭇가지로 등을 두드리며 딴 길로 빠지지 못하게 막았다.
일부 방역 공무원은 이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는지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숙였고, 가끔 '꽥,꽥~'하는 돼지의 울음소리가 멀리 도로에까지 들려와 바라보는 이들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이 농장은 25일 돼지 6마리의 입 주위에 수포가 생기고 침 흘림 증세를 보인다고 구제역 의심 신고가 됐고 구제역이 발생한 강원도 원주 도축장에 돼지를 출하하는 등 역학관계가 있어 이미 살처분이 결정된 곳이다.
여주군이 이날 새벽 3시까지 살처분을 마무리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늦어지면서 오후 1시께 살처분이 모두 끝났다.
이 농장의 돼지는 결국 26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정밀 검사결과 구제역 양성판정이 내려졌다.
농장 진입로 앞에서 방역활동을 하는 공무원 이모(54)씨는 "피땀 흘려 자식처럼 키운 돼지를 땅에 묻는 농장주인을 생각하니 나도 가슴이 아프고 미어질 지경"이라며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구제역 차단을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비상근무를 해 온 여주군 권병률 축산팀장은 구제역이 확진되고 나서 앞으로의 대책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10여 년 넘게 구제역 관련 업무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사람을 절망하게 한 적은 없었다"는 권 팀장은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내리자 "미안하다,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말을 맺었다.
이 돼지농장처럼 25일 입안 염증 등 구제역 의심증세를 보인 가남면 안금리 김모씨 농장의 한우 2마리도 구제역으로 확진돼 이 농장 한우 140여마리도 살처분될 처지에 놓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