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잡기-금②> 금의 경제사 ‘영원히 빛난다’
2010-12-12 15:34
(아주경제 이상준 기자) <편집자주>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金)값의 초강세 흐름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며 이어지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에 따르면 미국 경제의 추락과 이에 따른 달러 가치의 추가 하락 가능성 때문이다. 이런 분석을 반영하듯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과 기업 및 개인의 금 보유 비중이 계속 늘고 있다. 물론 금값 강세는 안전자산 선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절대가치’ 금값에 대한 경제사와 흐름에 대해 3회에 걸쳐 싣는다.
제1회 절대가치 ‘금값’ 거품단계로 성큼 성큼
제2회 빛나는 금의 경제사
제3회 꿈틀거리는 중국의 ‘금 전쟁’
<제2회> 빛나는 금의 경제사
글로벌 경제위기, 유럽 재정위기, 제3차 환율대전을 거치면서 금의 가치가 치솟고 있다. 최근 몇 달간 연일 금값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골드 랠리’가 거침없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지난 9일(현지시간) 금 2월 인도분 선물가격이 전날보다 9.60달러(0.7%) 오른 온스당 1392.8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6일 1416.10달러보다 소폭 하락하며 주간 횡보세를 보이고 있다.
금값은 내년 6월이면 온스당 1450∼1600달러까지 치솟을 것이란 전망이 힘을 얻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처럼 온스당 2000달러를 내다보는 시각도 있다.
지난해 이맘때 온스당 1062달러를 기록하면서 ‘금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외신들이 부산을 떤 것은 이제 ‘호들갑’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금값이 끝을 모르고 치솟는 이유로는 우선 미국과 일본이 앞 다퉈 공급하는 풍부한 유동자금이 실물자산 투자에 쏠리고 있는 점이 꼽힌다.
통화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절대통화’로 여겨지는 금으로 쏠리면서 사재기가 가열되는 양상이다. 언제나 변함없이 반짝이지만, 위기 시에 더욱 사람들 눈에 띄는 금의 속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는 셈이다.
◇ 금의 역사적 의의
금은 부를 상징하는 이외에도 세계 어느 곳에서나 금을 대가로 지불하고 재화와 노동력을 제공받을 수 있는 화폐로서의 역할을 다해왔다.
금의 채취는 인류가 인류사회를 형성해왔던 최초의 시대에 많은 노동력을 장기간의 노동시간에 투입해야 했으므로 희소성이 있고 생활에 필수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2세기의 십자군 원정 이후 13세기까지 결제통화로서의 금의 역할이 급속히 높았고 이에 따라 금의 수요도 급증하여 지중해 주변의 금 광산의 개발이 급속히 진전됐다. 15세기에 들어 유럽 제국에서 아시아의 금을 구하기 위해 여러 차례 내항한 무역에 의하여 많은 상품이 들어왔다. 그 대금으로서의 금의 수요가 급증하여 금 광산의 개발이 촉진되고 채굴된 금광석을 제련하는 기술도 급속히 발달되었다.
‘장식품으로서 금’과 ‘화폐로서의 금’ 사이에 긴장이 생겨난 것은 아주 일찍부터 일어났으며, 이 긴장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금을 소유하는 것은 재산의 저장소 역할과 동시에 권력을 쥐는 수단이었다.
금이 화폐로 사용되기 위한 척도로 아시아지역에서 수백 년 동안 주된 화폐로 쓰였던 조개껍질과는 달리 금은 놀라울 정도로 내구성이 강해서 쉽게 조각나지 않았다.
이로써 금 조각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어디서든 높은 가치를 지닌 것으로 즉시 인정받았기 때문에 금으로 만든 화폐가 널리 퍼지게 됐다.
이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전까지 금은 여러 장신구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금에 남다른 가치를 부여한 첫 민족은 고대 이집트인들로 알려져 있다.
BC 4000C 고대 이집트 ‘파라오 메네스’라 찍힌 금괴를 화폐로 사용했다. 각각의 금괴에는 파라오 메네스(고대 이집트 제1왕조의 창시자)의 이름이 찍혀 있었다.
또 투탕카멘의 황금유물 등에서 이집트인들의 금에 대한 열망과 금을 다루는 정교한 기술 수준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해외 무역에서도 금을 교환 매개로 사용했다.
이집트인들은 심지어 금과 은 사이의 비율까지도 분명하게 규정해 놓았다. 인류 역사상 대부분동안 은의 가치는 금 가치의 5~8%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은 12~20대 금 1의 비율이었다. 그러나 이집트인들은 은의 가치를 금 가치의 10%와 같은 것으로 정해놓았다.
영국 금융학자 글린 데이비스는 “이집트인들이 언어와 문화, 인종이 다른 사람들도 금을 알아보고 기꺼이 물건 값으로 받아들이는 점을 보면서 ‘금=부(富)’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 금력은 국력?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인간은 금을 추구해왔고, 금을 많이 보유한 금력(金力)은 곧 국력이 돼왔다.
고대 이집트, 히타이트, 스키타이에서부터 아테네, 로마제국, 사산조 페르시아, 무굴제국, 잉카제국, 합스부르크제국, 스페인, 대영제국, 제정 러시아, 나치 독일 모두 금과 은에 대한 탐욕에선 둘째라면 서운해 할 국가 및 민족들이다.
인류가 이처럼 금에 집착한 이유는 바로 금이 매우 희귀한 금속이기 때문. 금은 바위 250톤을 파헤쳐야 1온스가 나올 정도로 희소하다.
이에 따라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생산된 금은 15만8000톤으로 추정된다. 앞으로 생산될 수 있는 금의 추정량은 6만∼7만 톤으로 생산량은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역사학자들은 대략 기원전 1500년경부터 인간이 본격적으로 금을 갈망해온 것으로 분석한다.
금을 주고 필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인간에게 금에 대한 욕망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집트와 대립했던 히타이트, 고대 중앙아시아의 지배자 스키타이, 지중해 상권의 지배자 페니키아 등이 모두 금의 소유를 놓고 경쟁을 벌였고, 이에 따라 금의 지위는 계속 상승했다.
동양에선 기원전 1091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금이 법정 화폐로 인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꾸준히 귀금속의 대명사로 대접받던 금은 16세기에 들어선 인구나 군대, 농업 생산력보다 더 중요한 국력의 원천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즉 중금주의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당시 페르난도 스페인 왕을 비롯한 서유럽 군주들은 금을 한 조각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대서양 너머에 군대를 파견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게 된 계기도 금 때문이었다. 지독한 ‘황금광(狂)’이었던 그는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전설의 황금섬으로 소개한 지팡구(일본)를 찾아 여러 섬을 전전했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뒤 그는 “신대륙에서 발견한 금의 10%를 갖겠다”는 자신의 뜻을 스페인 황제가 꺾어버리자 불같이 화를 낼 정도로 황금에 집착했다.
산업혁명 이후 금이 국부의 원천이라기보다는 통화가치의 안전판으로 위상이 바뀐 이후에도 주요 강대국들은 금 보유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다. 세계 10대 금 보유국을 살펴보면 여전히 ‘금력=국력’이란 공식이 성립하는 것을 알 수 있다.
◇ 세계 ‘금력’ 키우기 경쟁 치열
미국은 올 6월 말 현재 8133.5톤의 금을 보유하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등도 금 보유 최상위권 국가로 금력 키우기에 한창이다.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금 생산국으로 떠오른 중국은 자국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만들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금을 공격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중국의 금 보유량은 1054.1톤으로 세계 6위에 해당한다. <화폐전쟁>의 저자인 중국의 쑹훙빙(宋鴻兵)은 “금에 기초하지 않은 화폐는 쇠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금은 현대사회에서도 권력의 원천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금에 대한 집착을 비판했다. “한 나라의 부유함은 귀금속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국민이 소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그의 일갈이었다.
하지만 스미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인류는 금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며 역사를 써왔다. 문제는 현재 채굴이 쉬운 곳에 매장된 금은 대부분 캐낸 상태라는 점이다.
황금을 향한 인류의 욕망과 경쟁이 더욱 거세지고, 금은 점점 부족해지고 있는 21세기에는 과연 어떤 역사가 펼쳐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