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진의 육조거리24시] 한·미 FTA, 감추기 급급한 정부
2010-11-23 10:06
(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교섭대표는 지난 18일 당초 예정에 없었던 브리핑을 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양국 통상장관들이 '서울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직전에 예상 기일을 넘겨가면서까지 FTA 타결을 위한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절충점을 찾지 못한 채 끝난지 1주일만이었다.
이날 브리핑은 양국 정상들이 G20 정상회의에서 밝힌대로 FTA 협상 타결을 위한 대비책이나 진전이 있었는지 등의 여부에 관심이 모아졌지만, 예상과 달리 협상 내용에 대한 해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의외의 결과가 밝혀졌다.
정부는 그동안 한·미 FTA 논의에 대해 '추가 협상'이나 '협의'라는 식으로 의미를 축소해왔지만 결국 사실상 '재협상'이 이뤄지고 있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한 것이다.
최 대표는 "이번 한·미 통상장관협의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안을 다루기 위해서는 협의로는 부족하다"면서 "주고받기 식의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미 FTA 협의를 하더라도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치지 않겠다'던 정부의 기존 입장이 협정문을 수정할 수도 있는 상황으로 바뀌었음을 의미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한 언론이 앞으로 한·미 양측이 진행하고 있는 FTA 협상에 대해 '추가 협상' 대신 '재협상'이란 용어를 사용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현재 협상이 14개월 간의 긴 협상 끝에 2007년 4월 타결된 협정문 내용을 수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때문에 이날 최 대표의 브리핑은 결국 정부에서 그동안 강조해왔던 '재협상은 없다'는 입장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논란이 확산될 기미를 보이자 뒤늦게 해명에 나선 것으로 해석됐다.
최 대표는 다만 "전면 재협상은 아니다"고 강조하면서 "극히 제한된 부분에 대한 주고받기식 협상"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전면 재협상은 아니라는 말은 반대로 '일부는 재협상'이라는 의미도 된다. 그동안 우려하던 것이 사실로 확인되자 대부분의 언론은 다음날부터 일제히 '사실상 재협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FTA 협상에서 또 한가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했다.
당초 G20 정상회의 개최 직전에 타결될 것으로 관측됐던 FTA 협상이 막판에 결렬된 직접적인 원인은 쇠고기 문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 협상에서 쇠고기와 관련된 논의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누차 강조해 왔다.
때문에 미국이 당초 예상과 달리 쇠고기 문제는 거론하지 않고 자동차 시장개방과 관련된 진입장벽 완화조치를 요구했으며, 우리측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양보의사를 피력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0일에서야 미국 측이 그동안 쇠고기 관련 자료를 잔뜩 올려놓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확대 문제를 협의할 것을 우회적으로 압박한 사실이 전해졌다.
결국 쇠고기 문제가 갖고 있는 파급력을 우려한 정부가 미국의 논의 요구가 있었던 사실조차 애써 쉬쉬하다가 막판에 공개한 것이다.
한·미 FTA 협상은 타결되는 것 자체보다도 그 내용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안그래도 얻을 것이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감추기만 급급한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가 마지막에 국민 앞에 내놓을 결과가 실로 우려스러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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