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진 위원장 "외규장각도서 반환 환영"
이태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12일 프랑스가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대여갱신 형식으로 반환키로 한 것과 관련, "사실상 돌려주겠다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야 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 위원장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1991년부터 재불 서지학자인 박병선 박사와 고 백충현 전 서울대 교수, 이근관ㆍ이상찬 교수 등과 함께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 환수운동을 벌여 왔다.
한일강제병합 심포지엄 참석차 일본 출장 중인 이 위원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한 국제전화에서 "적어도 영구임대 방식은 돼야 한다는 우리 요구에 대해 등가교환 방식을 주장해 온 프랑스가 대여갱신을 택한 것은 법적 문제 등 현실적인 요소를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사실상 반환 조치가 이뤄지게 된 것을 보니 큰 보람을 느낀다"며 "2007년 백 교수가 돌아가시고 박병선 박사도 암투병을 하고 계신 걸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것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환 요청에 대한 프랑스의 반응은 1993년 9월 처음 나왔다"며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한국 방문을 앞두고 사실상 반환을 약속했지만 실무자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에 부딪혀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프랑스 당국이 다른 나라에서 온 문화재 처리 문제를 감안해 미테랑 대통령의 뜻과 다른 구실을 붙여서 반환을 지연해 왔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 위원장은 "미테랑 대통령이 처음 돌려주겠다고 했을 때는 과연 문화대국이라고 생각했다가 곧 실망하고 말았다"며 "이제는 진짜 문화대국답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이 약속했는데 파리국립도서관 직원이 거부했을 때는 깜짝 놀랐다. 이를 수습하러 외무부 구주국장이 프랑스에 다녀온 뒤 '프랑스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는 것을 듣고 망연자실했었다"고 전했다.
1993년 당시 미테랑 대통령은 의궤 가운데 한두 권을 먼저 갖다 달라는 한국의 요청에 '휘경원원소도감의궤'(徽慶園園所都監儀軌) 상하 2책을 갖고 왔지만 수행단의 일원으로 온 담당사서가 인도를 거부했다.
담당사서는 "강화도에서 온 조선 책은 이미 파리국립도서관에 등록돼 프랑스의 국가 재산이 됐기 때문에 넘겨줄 수 없다. 책을 가져 온 것은 한국에 보여주려는 것이지 선물하려는 게 아니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수행단이 간신히 사서를 달래 미테랑 대통령이 한국을 떠나기 몇 시간 전 한 책만 받아서 급히 청와대에 전달하는 외교적 결례가 벌어졌다.
이 위원장은 "외규장각 환수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국민의 인식 전환이라고 생각한다"며 "규장각이 뭔지조차 잘 모르던 사람들도 큰 관심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 위원장은 외규장각 도서의 소재를 찾아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박 박사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근무하던 1979년 베르사유 분관의 파손도서 처리실에 쌓여 있던 외규장각 도서의 존재를 처음으로 확인했고 결국 환수와 관련해 해직까지 당했다"고 전했다.
이 위원장은 프랑스 외규장각 도서의 국내 보관 문제와 관련해 "관계기관끼리 협의를 거쳐 결정해야 할 것"이라며 "원래 규장각 도서의 일부였고 서울대가 환수운동을 시작했으니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있는 국왕 어람용 외규장각의궤는 초주지(草注紙)라는 특수종이를 사용해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마치 금방 만들어진 것처럼 깨끗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위원장은 "파리를 방문했을 때 본 외규장각의궤는 흰 종이의 질감이 빳빳하고 그 위에 찍힌 붉은 괘선도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지금은 초주지를 어떻게 만드는지 아는 사람이 없는데 세계 최고 수준의 전통 제지기술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