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방세 민간위탁', 공익적 견지서 다시 생각해야

2010-11-04 14:24

   
 
 
김만호 P&D tax 세무회계 대표

우리 나라에서 세금 제도가 처음으로 시작된 것은 왕이 등장한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시대부터 토지에 매겨 곡식을 받던 조(租), 사람에게 노동력을 부과하던 용(庸), 집집마다 특산물을 징수하던 조(調)로 대표되는 조용조 제도는 이후 조선시대까지 그 형태나 명칭을 변화하며 조세정책의 근간이 되어왔다.

이같은 조세제도는 집집마다 낸 세금으로 나라를 지키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데 사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국가의 성립과 함께 조세제도가 실시됐던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그만큼 조세제도의 공적 역할의 중요성도 강조된다.

특히 나라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조세제도가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흔들릴 경우, 국가의 존망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은 근대의 프랑스대혁명이 방증한다.

또한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시작된 '법인세' 감세 논란이 가져온 정치, 사회적 시시비비는 조세정책의 중요성이 오늘날 현대사회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을 다분히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세금을 걷는 방식이나 액수를 고칠 때 굳이 이에 관련된 관한 법률을 고쳐야만 가능토록 하는 엄정한 조세법률주의를 견지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와 함께 법의 근간인 헌법 38조에는 '납세의 의무'를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로 지정한 뒤 정부조직법 '제6조'에 '국민의 권리, 의무와 직접 관계되지 않은 사무만 민간에 위탁할 수 있다'고 명시해 징세의 권리는 공권임을 분명히 했다.

지난 2일 신용정보협회는 조세연구원에 의뢰한  '지방세 체납징수 업무의 민간위탁 방안' 연구용역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조세연구원 측은 지방세 수급상황에 대해 행정인력의 충원이 쉽지 않은데다 체납건수가 매우 많아 상당한 체납 계정이 사실상 방치된 상태라고 밝혔다.

또한 지방세 징수를 담당하는 조직의 규모가 작아 전문성 있는 체납징수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용역결과를 지방세 징수의 민간위탁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용역결과에서 도출한 차선책으로는 체납징수 업무의 민간위탁 방안에 대한 선택권을 지방정부에 허용하는 방안도 내놓고 있다. 이번 연구용역을 의뢰한 신용정보협회에는 이전에도 국세의 민간위탁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지방세 미정리 체납액은 3조4096억원으로 지방세 부과액(49조7000억원)의 6.9%에 달한다. 또한 국세는 2008년 세금 부과액 대비 미정리 체납액의 비율은 1.8%다.

따라서 일견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업무의 효율성을 볼 때 신용정보협회를 지지하는 채권추심업체들의 노하우는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세금의 민간추심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단순히 효율성으로 대체할 수 있을까? '징세권'은 인권침해 가능성이 특히 높은 분야다. 잘못된 세금징수는 재산권과 인간 존엄성을 침해할 수 있고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과연 민간추심의 효율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손쉽게 국가의 업무를 민간에 넘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필자는 지난 30여년 동안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며 '국가의 세금징수'라는 업무를 맡아왔다. 그간 납세와 관련한 수많은 업무를 다루며 세금의 징수가 납세자의 권리와 상충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 볼 때 '납세'는 분명 '체납율'에 따른 수치로는 해결할 수 없는 민감하고 어려운 영역이며 반드시 역량과 책임을 겸비한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옳다.

민간 위탁을 시행했던 미국도 단 3년여 시행한 뒤 2009년 중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체납자 선정 후 위탁기관이 징수하는 기간이 길어 가산금이 증가하고 국가의 초기징수 실패로 세금징수액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징세의 민간 위탁 폐지 법안이 미의회에 계류돼 있다는 점은 세금의 민간위탁을 고려하는 이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세금의 민간위탁을 고려하기 앞서 어떠한 이익과 권리가 가장 먼저 고려되야 하는지 생각해 볼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