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영화 발목 잡는 등급 심사…"대체 뭐가 문제인가?"
2010-10-06 07:43
(아주경제 김재범 기자) 영화 상영의 관람 등급을 심사하는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연령별 관람 등급 심사’가 또 다시 도마에 오를 조짐이다. 오는 1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심야의 FM’이 등급 심사 문제로 지난 4일 예정된 언론시사회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취소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심야의 FM’은 당초 ‘15세이상 관람가’ 등급으로 영등위에 신청했으나, 이보다 제한 수위가 높은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2차 편집을 거쳐 재심의를 신청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에 영화제작사측은 일부 문제 장면을 수정·보완해 3차 심의를 신청했다. 그러나 시사회 당일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자, 제작사는 영등위의 최종 통보 이후로 시사회를 보류했다. 이로 인해 ‘심야의 FM’은 영화 홍보 일정 등 전반적인 진행상황에 차질을 빚게 됐다.
이 영화는 인기 심야 라디오 DJ(수애)가 생방송 중 자신의 가족을 인질로 잡은 인질범(유지태)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을 그린 스릴러물로, 이번 등급 심사 문제로 인해 표현 수위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영아 유기 및 폭력 수위가 상당하다.
현재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대한 법률'에 따르면 국내 개봉 영화의 구분은 ▲전체 관람가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 5단계로 구분된다. 10인의 심사위원의 판단 기준에 따라 등급 판정이 결정된다.
영등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노출에 집중된 등급 판정이 주를 이뤘다면 현재는 전체적인 흐름을 중요하게 판단해 심사를 진행한다”며 심사 기준을 밝혔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
하지만 일부 영화인들은 영등위의 심사 기준에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일관성이 없고 심사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
한 영화 관계자는 “등급 판정도 들쑥날쑥하다”며 “문자 그대로 영화마다 ‘그때그때 다르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지난 8월 김지운 감독의 영화 ‘악마를 보았다’는 사체 훼손과 인육을 먹는 장면 등이 문제가 돼 국내 개봉이 불가능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전력이 있다.
그러나 2007년 국내 개봉한 중국 영화 ‘중경’의 경우 여성의 음모와 남성의 성기가 장기간 노출되는 장면이 포함됐지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국내에 상영이 결정됐다.
같은 해 개봉한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의 ‘색, 계’ 역시 여배우의 음모 노출 등과 ‘실연’ 의혹이 불거질 정도로 강도 높은 정사신이 화제였지만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으로 국내 상영이 이뤄졌다.
등급 심사 문제로 가장 화제를 모은 영화는 2002년 개봉한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를 들 수 있다. 다큐 형식을 빌려 제작한 이 영화는 구강성교와 성기 노출 등 파격적인 표현으로 이슈가 됐지만, 노인들의 성과 삶에 대한 진솔한 시각으로 영화인들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연이은 심사에도 불구하고 ‘제한상영가’ 등급 결정이 났고, 결국 화면처리를 거쳐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영등위 측은 등급 심사에 대한 명확한 기준마련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전했다.
영화 '죽어도 좋아' |
영등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심사위원 10인의 주관적인 판단이 등급 심사의 큰 맥락”이라며 “구체적인 심사기준 마련은 너무 포괄적이며, 세계 어느곳에서도 그 같은 방식으로 심사를 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2008년 7월 ‘영화및비디오물의진흥에대한법률’에서 “제한상영가 영화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어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고, 표현의 자유제한과 관련된 사안도 영등위에 위임돼 있어, 포괄위임금지원칙에도 위배된다”는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kimjb517@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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