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포커스] 원자재 위기…위기관리전략 새로 짜라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최근 상품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에서 거래된 밀 선물 가격은 지난 6월 이후 무려 70% 급등했다. 옥수수와 커피 가격도 각각 24개월, 13년래 최고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고깃값도 마찬가지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선물 가격도 최근 1년새 각각 15%, 55% 올랐다.
최근 1년간 주요 상품 선물가격 추이(출처: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 |
상품시장의 변동성이 커지자 기업가에는 비상이 걸렸다. 수요는 급증하고 있는데 원자재 수급 환경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기자동차업체 비야디(BYD)가 중국 리튬광산의 18%를 사들인 것도 안정적인 배터리생산을 위한 조치다.
미국 초콜릿업체 마르스(Mars)는 세계 최대 컴퓨터 메이커 IBM, 미 농업부와 손을 잡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코코아 품종을 얻기 위해 코코아의 게놈염기서열 분석에 나선 것이다.
미국 경제 전문지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4일자 최신호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최근 급격히 커진 상품시장 변동성에 맞서 위기관리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고 전했다.
해롤드 서킨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시니어파트너는 상품가격의 급등세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단지 시장 내 수급 변화에 따라 가격이 움직였지만 최근에는 외부 충격에 따른 영향이 훨씬 커졌다는 지적이다.
그는 대표적인 외부 충격 요인으로 이상기후와 급증하는 탈빈곤 인구를 꼽았다. 서킨은 특히 향후 10년간 가난에서 벗어나 '소비의 세계'로 진입하는 개발도상국 인구가 10억명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기업들이 상품시장 움직임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급등락에 맞서 흔히 쓰는 방법은 선물과 같은 파생상품투자다. 미국 식료품기업 제너럴밀스가 지난 2분기 거둔 수익도 상당 부분 선물투자에서 비롯됐다. 곡물가격이 뛰기 전 선물시장에서 물량을 확보해 둔 것이다.
이 회사는 2011회계연도에 쓰일 곡물과 에너지 등 전체 원자재의 65% 가량도 이미 선물시장에서 확보해 뒀다고 밝혔다.
BYD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원자재 납품처를 아예 사들이는 것이다. 세계 최대 철강업체인 아르셀로미탈도 철광석과 석탄 광산을 공격적으로 매수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오는 2015년까지 40억 달러를 투자해 1억t 상당의 철광석 생산능력을 갖추겠다고 밝혔다.
원자재 생산을 지원하는 기업들도 있다. 세계 최대 식품기업 네슬레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 8월 말 오는 2020년까지 10년간 5억 스위스프랑을 투자하는 커피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네슬레는 커피프로젝트를 통해 커피재배 농가에 질병에 강하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커피나무를 제공하고 재배와 관련한 컨설팅도 해 줄 계획이다.
앞서 네슬레는 지난해 10월 1억1000만 스위스프랑을 들여 코코아의 품종을 개선해 오는 2020년까지 재배농가에 1200만그루를 제공하는 코코아프로젝트도 발표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을 덩달아 올리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고객을 경쟁사에 빼앗길 수 있다는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세계 최대 커피체인 스타벅스는 최근 커피원두와 설탕, 코코아 가격이 급등하자 일부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다.
그레그 커더히 액센추어 이사는 상품시장의 변동성 확대 기조가 뚜렷해지면서 기업들의 원자재 납품계약 방식에 변화가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정 상품을 통째로 사들인 뒤 물량이 다 소진됐을 때 수요에 따라 매입 규모를 조절하는 방식이나 계약 기간을 연장하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면 한동안 원자재 공급이 보장돼 기업은 생산유연성을 높일 수 있다. 그는 "대기업은 더 이상 납품업체를 쥐어 짤 수 없게 됐다"며 "대기업은 이제 납품업체를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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