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미국서 한국불교 알리기 시동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뉴욕 맨해튼의 유엔 본부 앞. 회색 승복의 한국 스님들이 줄지어 이동하자 뉴욕 시민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쏟아졌다.
이들은 '한국불교 세계화'를 내걸고 지난 14일부터 열흘 일정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을 방문해 한국불교 알리기에 나선 대한불교 조계종 대표단이다.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주요 과제로 조계종은 ▲해외사찰 활성화 및 해외교구 설립 ▲사찰음식 세계화ㆍ템플스테이 홍보 ▲지구촌 평화와 공동선을 위한 노력 ▲종교 갈등 해소 등을 선정했다.
◇해외교구 설립 = 세계 144개 한국 사찰 중 미국 지역에는 80여개의 조계종 사찰이 있고, 한국스님 130여명이 활동 중이다.
한국 불교는 1970년대 숭산스님이 미국 현지인 포교에도 힘을 쏟아 많은 '푸른눈의 스님'들을 제자로 배출했지만 대체로 1960년대부터 로스앤젤레스나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애틀 지역 등의 교민사회를 중심으로 교민 포교에만 치중해왔다.
반면 티베트불교는 1970년대 달라이라마가 하버드 대학생 3000명에게 불교 철학을 가르치면서 미국 지역에 진출한 이후 미국 주류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잇따라 티베트 불교에 귀의했다고 밝힌 것도 포교에 큰 역할을 했다.
또 틱낫한 스님의 미국 활동으로 베트남 불교도 미국 내에서 상당한 인지도를 갖고 있어 조계종이 하루빨리 해외사찰들을 조직화ㆍ체계화해 적극적인 포교에 나서지 않는다면 한국불교의 입지는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미국 종교법인법이 있는 만큼 해당 사찰들의 정관을 개정해서 공찰화하는 문제에 대해 여론을 들을 예정"이라며 "해외교구 설립과 관련한 입법은 빠르면 내년 3월 마무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교민 대상이 아닌 현지인 대상 포교를 담당할 인력 확보도 어려운 문제다. 현지인과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인력을 당장 조달하기는 어려워 조계종에 귀의한 외국출신 스님들을 재교육시켜 파견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자승스님은 아울러 "상급자의 명령에 순명하는 가톨릭 등 다른 종단과 달리 우리 스님들은 내키는 대로 걸망을 지고 훌쩍 떠나거나, 선방에 들어가서 몇년간 수행하거나, 외국에 가도 아무런 제어를 받지 않는 풍토여서 해외에서 포교하라며 강제로 파견하는 것은 어렵다"고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해외교구 설립문제의 실무를 맡은 무애스님은 "미국 내 사찰 스님들이 겪는 애로사항이나 요구를 종단이 수용하고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라고 말했다.
◇사찰음식 세계화 = 2002년 월드컵 이후 한국의 주요 관광상품이 된 템플스테이에 이어 사찰음식은 조계종이 해외무대에 새롭게 내미는 한국불교의 얼굴이다.
친환경ㆍ채식이라는 세계적인 트렌드와도 맞는 한국사찰음식이 국제적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20일 맨해튼 소호의 연회장 스카이라이트(Skylight)에서 320여명을 초청해 개최하는 '한국사찰음식의 날(Experience Korean temple cuisine)' 행사의 초청대상은 현지 한인이 아닌 뉴욕 문화계, 음식업계 관계자들이다.
사찰음식시연단 11명을 이끌고 조계종 대표단의 일원으로 뉴욕을 찾은 조계종 문화부장 효탄스님은 "이번 행사는 종단 차원에서는 사상 최초로 벌이는 사찰음식 홍보행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효탄스님은 "이번 행사에 참석했던 미국 유명 셰프나 주요 언론방송 음식담당에디터, 기자들에게 앞으로 메일링 서비스를 하면서 지속적으로 우리 사찰음식을 홍보하겠다"고 말했다.
또 "더 나아가서는 한국사찰음식을 테마로 한 템플스테이를 개발하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내에 한국사찰음식 전문점을 오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연단에는 한국사찰음식연구회 회장 적문스님을 비롯해 선재스님, 대안스님, 우관스님, 정관스님 등 사찰음식계를 대표하는 스타스님들이 총출동해 사찰음식 40여가지를 뷔페식으로 제공한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남방 불교의 경우 탁발을 원칙으로 하루 한끼만 먹기 때문에 '사찰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한마디로 아궁이가 없는 불교"라며 "중국도 불교의 명맥이 사실상 끊어졌다고 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찰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라고 설명했다.
◇지구촌 공동선 참여와 종교갈등 해소 = 지난 17일 맨해튼의 조그마한 채식식당 '캔들79'에서는 세계 여러 종교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뉴욕 유대교단의 랍비 조셉 포태스닉, 미국 성공회 클로 브라이어신부, 이슬람 여성모임의 아이샤 알 아다위아, 천주교 뉴욕대교구의 케빈 설리번 신부, 그리스정교회의 알렉산더 카루소 신부 등을 비롯해 시크교, 힌두교 지도자 등 뉴욕다종교협의회 임원 10여명이 조계종 방미단 스님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이들은 "총무원장이란 어떤 직책인가?"부터 최근 9.11기념일을 전후해 미국사회를 달군 개신교-이슬람간의 갈등을 언급하며 "한국에서는 종교적 갈등이 일어났을 때 어떤 식으로 해결하는가"등의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대화를 마친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특정 종교가 갈등의 소지가 될 행위를 하면 함께 모여 시정을 요구하는 문화, 종교의 차이에 의한 범죄를 막기 위한 증오범죄법 등은 한국사회에서도 종교간 갈등을 해소하는데 참고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한국불교가 세계적인 이슈에도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공동선을 구현하는데 기여하기로 한 것은 국내에서는 화쟁위원회를 통해 사회갈등 해소의 장을 만들겠다고 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자승스님은 이번 방미 기간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만난 자리에서 2013년 세계종교지도자포럼을 한국에서 열고 2012년에는 세계불교도우의회를 여수에서 개최하는 등 국제적인 행사의 호스트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또 20일에는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을 만나 세계불우아동과 이재민을 돕기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아이티 지진구호자금도 전달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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