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경의 트렌드 브리핑] 이유있는 인문학 열풍
CEO들이 앞장서 먼지 바람을 일으키는 인문학 열풍은 직원들에게까지 전파되고 있다. 심지어 삭막한 조직문화가 특색이었던 건설회사들이 대표주자로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 포스코, 우림건설 등이다. 현대건설은 아예 인문사회계열 출신들의 채용 비중을 늘리는가 하면 포스코는 매월 팀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논어, 맹자 등 고전강좌를 하고 있다고 한다. '독서경영'을 표방하는 우림건설은 대표이사 주재 회의 시작 전에 시 낭송을 먼저 할 정도라고 한다.
시중에도 인문학 바람은 거세다. 민음사 등 몇몇 주요 출판사들과 '문학사랑' 등 인문학 여행 전문 사단법인, 각종 교육 기관에서 개설하는 인문학 강좌는 개설 초기 신청자가 쇄도하는가 하면 국립중앙도서관도 매월 공연 예술가와 인문학 작가들을 초청해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10여년째 인문학 여행 코스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문학사랑 이종주 상임이사는 "문명이 발달할수록 CEO나 전문가들은 물론 대중들 사이에서도 고급 지식에 대한 욕구가 생기고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있다"며 인문학 열풍의 배경을 설명했다.
인문학 열풍의 첨병인 출판계에서는 독자들의 독서 취향 변화라는 맥락에서 색다른 진단을 내놓는다. 도서출판 시간여행 맹한승 기획이사는 "독자들이 성공학이나 실용서에 식상했다"고 말했다. 독자들이 식빵 위에 바른 잼 처럼 엷게 펴 발라진 얕은 지식이 난무하는 실용서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CEO들의 인문학 심취에 대해 이준정 박사(서울대 장수 최고경영자 과정 특강 강사ㆍ미래탐험연구소 소장)는 미래학과 연관시켜 독특한 분석을 내놓는다. 철강 신소재 분야 석학이기도 한 이 박사는"디지털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달해서 인간 존재와 생존 조건을 변화시키는 미래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CEO들이 이러한 미래 변화에 적응하려는 인식론적인 무기로 인문학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 MBA 출신으로'학문, 현실에 말을 걸다'의 저자인 이면희 박사(경영학)는 "오늘날 경제 환경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을 만큼 복잡계적이다. 경기 부침과 경영 성패의 변수가 너무 많고 대다수 변수들이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런 시기에는 조직과 고객, 즉 '사람'만이 희망일 수 밖에 없으므로 경영자들이 사람에 대한 인사이트(Insightㆍ통찰력)를 얻고자 인문학 공부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학과 철학 등 인문학 도서를 한 달에 10권 이상 꾸준히 읽는다는 이문형 투마로우피플 대표이사는 "소비시장이 성숙하면 고객의 입맛에 맞는 마케팅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소비자의 심리와 사회 환경 분석을 해야 하는데, 인문학적 통찰이 그 기초"라고 단언했다.
어떤 이유이건 오늘날 '인문학 열풍'은 혼돈, 위기, 불안의 기운이 아니라 예측, 긍정, 희망의 열기를 뿜어 내고 있다. 거친 세파, 앞으로 더 큰 위기가 닥칠지 모르지만 인문학이 우리 모두에게 정신적 위안이자 지적 무기가 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인문학 열풍이 전국 방방곡곡에 불어 닥쳐 온 누리에 축복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트렌드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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