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美·日 반도체 협정’ 재현?

2010-07-05 10:15
한·미 FTA 추가 실무협의 들여다보니

(아주경제 이광효 기자)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곧 갖게 될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 실무협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미국 정부가 그동안 보여왔던 자국의 이익에 기초한 이중적인 협상 태도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좀처럼 침체국면을 탈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 정부는 자국 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무역 상대국에 대한 통상압력을 높여왔다.

미국과 교역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에 위안화 가치 절상을 요구하는 것은 최근 미 정부가 보인 대표적인 자국 기업을 대변하는 무역협상 전략이다.

과거에도 미 정부는 일본과 가진 두 차례의 반도체 협상에서 일본을 압박해 미 기업에 유리한 협상결과를 얻어낸 전례가 있다.

따라서 서명된 지 3년이 지나 진행될 예정인 이번 한ㆍ미 FTA 실무협의에서도 미 정부는 어려움에 빠진 미국 자동차 업계와 축산업계를 대신해 우리 정부에 추가적인 자동차 시장 개방과 쇠고기 수입 확대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 국익 위해선 자유무역 원칙도 무시

미ㆍ일 반도체 협정은 무역에 대한 미국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불공정 무역협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협정이 체결된 배경은 지난 1980년대의 세계 반도체 시장 상황이다.

미국의 반도체 산업은 지난 1983년부터 시장 과열 상태에 있었는데 지난 1985년 불황을 맞이하면서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감소함에 따라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일본의 점유율은 급속히 높아져 1985년 256K DRAM의 경우 90%에 달했다.

미국반도체공업회는 지난 1985년 6월 “일본 반도체 산업은 과거 일본 정부의 통상정책에 기인한 국내의 폐쇄적 시장구조를 배경으로 과대한 설비투자를 했고 저가수출로 미국 산업에 피해를 주고 있다”며 일본제 반도체를 미국 무역대표부에 통상법 301조에 근거해 제소했다.

이후 미국의 반도체 제조업체 등의 일본 반도체 업체에 대한 덤핑 혐의 제소가 잇따랐다.

결국 미국과 일본은 지난 1986년 8월 제1차 미ㆍ일 반도체 협정을 맺었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일본 정부는 국내의 반도체 유저에 대해 외국산 반도체 활용 권장 △일본 정부는 외국산 반도체의 판매지원 등을 위한 기관 설립 △외국산 반도체의 일본에서의 시장 점유율을 1991년까지 20%까지 올림 등이었다.

이밖에 일본 업체는 미국 상무성에 DRAM과 EPROM에 대해 비용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상무성은 각사마다  DRAM과 EPROM의 미국에서 판매해야 하는 가격을 결정해 그 이하로 판매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또한 지난 1991년 8월에 체결된 제2차 미ㆍ일 반도체 협정에서도 1992년 말까지 일본시장 내 외국산 반도체의 시장 점유율이 20% 이상이 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사실 당시 일본은 자체적으로 기술혁신을 통해 좋은 품질의 반도체를 출시해 시장 점유율을 높인 것이어서 자유무역 원칙을 전혀 위반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것을 문제 삼았고 결국 일본과의 반도체 협상에서 자유무역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협정을 맺은 것이다.

◇미ㆍ일 반도체 협정 당시와 비슷한 현 상황

문제는 현재 상황도 미ㆍ일 반도체 협정이 체결된 당시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먼저 자동차의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는 미국에 52억5300만 달러어치의 자동차를 수출한 반면 미국으로부터는 1억3900만 달러어치의 자동차를 수입했다.

이에 따라 시장 점유율에서도 큰 차이를 보여 우리나라 자동차의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은 지난 2008년 1-9월 5.3%였던 것이 지난해 같은 기간 7.4%로 상승했다.

반면에 지난해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점유율은 0.5%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정치권에선 한ㆍ미 간 자동차 무역 불균형 문제 등을 제기하며 미국산 자동차의 한국시장 접근 확대를 촉구해 왔다.

이에 대해 지식경제부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이 낮은 이유는 소비자들이 국산 자동차의 품질도 좋고 가격도 괜찮아 미국산 자동차를 많이 구입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이것은 자유무역 원칙에서는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로 문제삼을 수 없다”고 말했다.

쇠고기의 경우 지난해 우리나라 쇠고기 시장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시장 점유율은 12.6%로 지난 2008년의 14.5%에 비해 2% 가까이 하락했다.

반면에 국내산 쇠고기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08년 47.6%에서 지난해 50%로 높아졌다.

미국 상원은 최근 한국, 일본, 중국 등에 모든 연령대의 미국산 쇠고기 및 부산물을 제한없이 수입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시장 점유율이 낮은 것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구입하지 않기 때문으로 자유무역 원칙에선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로 문제삼을 수 없다”며 “한ㆍ미 FTA와 쇠고기 수입위생조건과는 별개”라고 말했다.

leekhy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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