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활동하는 테너 김기선 "첫 고국 공연, 가슴이 뜁니다"
(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2007년 11월 16일 슬로바키아 코시체 국립오페라 극장. 베르디 오페라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가 울려퍼졌다. 관중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키 작은 한 동양 테너의 음성에 전율을 느끼며 우뢰 같은 갈채를 보냈다. 슬로바키아 Divadelný ústav지는 "그의 목소리는 시종일관 놀라운 고음을 보여줬다. 명암과 깊이가 무르익은 목소리로 까다롭기로 유명한 리까르도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했다"고 평했다.
유럽과 일본에서 유명한 테너 김기선(41)씨가 오는 8일 리골레토 두카역으로 첫 내한공연을 갖는다. 사진은 지난 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리허설을 하고 있는 모습. |
8일과 10일 두차례 연주하게 되는 그는 "너무나 가슴이 떨린다"며 고국 땅에서의 첫 공연에 대한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비엔나와 사라예보 국립극장 등에서 수십차례 공연을 가졌지만 2000년 한국을 떠난 이후 처음 갖는 오페라 공연이라 그런지 무척 흥분되고 또 긴장도 됩니다."
아직 국내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는 음악의 본고장 오스트리아 비엔나 음악계에서는 유명 인사다.
현재 비엔나 프라이너 음악원 성악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2005년부터 50회가 넘는 오페라와 콘서트 공연을 가졌다. 오스트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체코, 슬로바키아, 보스니아 등 동구권 주요 국립극장에서 커다란 체격의 서양인들을 제치고 줄곧 주역을 맡아왔다.
그는 데뷔하기 전부터 비엔나 시민들에게 '거리의 성악가'로 알려져 있었다.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길거리나 공원으로 나와 아리아를 불렀던 것.
“2001년 무작정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날아와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 한 번은 주인집 할머니로부터 ‘월세가 7개월 밀렸는데 당장 달라는 건 아니지만, 잘 기억하고 있으라’는 말을 듣고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는 길을 지나던 중 ‘거리의 악사’들을 보고 자신도 직접 거리에서 노래를 하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부끄러워서 소리도 제대로 못 냈습니다(웃음).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목소리에 자신감이 붙었죠. 어느덧 제 노래를 듣기 위해 시간을 맞춰 오는 시민들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비엔나에서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려면 관청에 시간별로 등록을 해야 한다.)
그러던 중 그는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비엔나 케른트너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가 사라예보 국립극장장인 안드레야 파블리치 부인의 눈에 띄었고, 부인의 소개로 파블리치 앞에서 오디션을 받기에 이른다. 결국 당시 거리에서 부르던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으로 2005년 10월 벨그라드 세르비아 국립오페라에서 데뷔하게 된다.
"리골레토는 저에겐 의미가 남다른 곡입니다. 그 노래로 우연히 사라예보 국립극장장의 눈에 들어 데뷔하게 됐죠. 또 제가 슬로바키아 국민 영혼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테너 피터 드보르스키(Peter Dvorsky)의 오디션에서 부른 곡이기도 하죠. 학창시절 제겐 우상이었던 그 분이 '여자의 마음'을 듣고 나서 '위버라슝(놀라워)'라고 외쳤을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합니다."
최근에는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지에서도 공연 요청이 늘고 있다. 아내와 함께 10년 가까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유럽에서 성악과 교수이자 오페라 가수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현재 비엔나에서 13명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음악의 본고장에서 오페라를 배우고자 하는 젊은 친구들이죠. 교수로서 학생들을 길러내는데도 일조하고 싶고, 무엇보다 오페라 가수로서 그동안 도전해보지 못했던 많은 곡들을 공연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늘 가슴 속에 한국인이라는 긍지를 안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디서 활동하든지 ‘자랑스런 코리안’으로 불리워지도록 노력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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