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시프트-2] 서민위한 시프트 오히려 서민 울린다
2010-06-08 17:53
(아주경제 권영은 기자) 서울시가 서민들의 주거복지 향상을 위해 도입한 장기전세주택(시프트) 제도가 오히려 서민들을 울리고 있다.
저가 공사에 따른 단열시설 미비로 난방비가 높아져 턱없이 비싼 관리비 때문에 입주민의 허리가 휠 정도다. 일부 단지의 경우에는 승강기 사용료와 청소비 등 부대비용도 일반 아파트보다 오히려 비싸다는 지적이다.
고소득자를 골라내기 위해 도입한 '입주자 신청자격을 위한 소득기준'(소득평가기준)도 무주택 서민들의 시름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예비 청약자 입장에선 최근 변경된 소득평가기준이 시프트의 입주 문턱을 더욱 높인 셈이다.
◆20평대 아파트 관리비가 일반아파트 30평대 수준
시프트의 품질은 턱없이 떨어지는데 관리비 만큼은 '펜트 하우스' 수준이라는 게 입주자들의 설명이다.
강일1지구 59㎡에 거주하는 주부 최모(35)씨는 "지난 겨울 한달치 관리비가 40만원 가까이 나왔는 데 그 중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90%"라며 "아파트 관리비 고지서만 보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최씨는 또 "너무 추워 온도조절기를 최고로 올려도 실내 온도는 1~2도 오르는데 그쳤다"며 "난방비가 너무 많이 나와 그 다음달 부터는 아예 중앙난방을 끄고 전기장판에 의존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통상적으로 저층 입주자의 경우 승강기 사용료가 고층에 비해 적게 나오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다. 최씨는 2층 거주자다. 최 씨는 "2층이나 10층이나 승강기 사용료가 같거나 혹은 더 나올때도 있어 관리실에 항의했지만 매번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토로했다.
최씨는 입주자 가운데 50% 이상이 이 같은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한겨울 극심한 추위를 견디다 못해 실내온도를 최고수준으로 높여놔도 따뜻해지긴 커녕 돌아오는 것은 30만~40만원에 달하는 관리비 뿐이었다는 것. 게다가 새 아파트에 외풍까지 더해져 불편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은평뉴타운 입주자 김모(40)씨는 "확장한 베란다 창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지난 겨울 두꺼운 커튼에 이불까지 동원해 바람을 막고 살았는데, 내라는 관리비는 일반아파트 30평보다 비싼 40만원이 넘었다"고 토로했다.
시프트 단지가 유독 추위에 시달리는 이유는 저가공사를 하다보니 단열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조경래 SH공사 고객서비스 단장은 "새 아파트이기 때문에 난방열기가 콘크리트 양생에 빼앗기기 때문에 2년간은 추워도 참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의 말은 다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그 얘기는 콘크리트가 제대로 양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주를 했다는 말과 같다"며 "아파트 벽면 곳곳에 나타난 잔균열은 콘크리트가 흡수하고 있는 수분을 배출하면서 열이 발생했다는 증거인데 그런 판단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변경된 소득 평가 기준 형평성 상실
시프트 입주를 위한 소득평가기준도 이상하다. 지난달 31일 공고된 강일2지구 전용면적 59㎡, 신혼부부 우선공급에 청약하려던 주부 박모(32)씨는 최근 바뀐 소득평가기준에 따라 시프트 입주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박씨는 지난해 2월 결혼과 동시에 퇴직했지만 새로운 소득평가기준에 따라 전년도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이 됐다. 남편의 월평균 소득 210만원을 합해 박씨 가족 월평균 소득은 410만원에 달했고, 59㎡의 3인가족 월평균 소득제한기준(272만2050원)을 초과한 것이다.
이는 지난달 31일 공고분부터 적용된 소득평가기준이 총 소득액을 일한 개월수로 나누도록 개선되면서 나타난 오류다. 즉 박씨의 두 달 소득은 400만원이고, 일한 개월수가 2개월이므로 월평균 소득이 200만원이란 얘기다.
하지만 연봉 3200만원을 받는 외벌이 도시근로자(3인 가족) 가정의 월평균 소득을 같은 방법으로 산출했을 때 266만원이 된다. 이 근로자의 경우 시프트 59㎡ 청약기회가 주어지고, 지난해 가족 총수입이 2920만원에 불과한 박씨는 청약자격을 박탈당하는 '엉뚱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SH공사 장기전세팀 관계자는 "최근 이런 민원이 많아 국토해양부에 질의해 놓은 상태"라며 "국토부의 답변이 올때까지 예비 청약자들은 기다릴 수밖에 없으며 적당한 대안이 없을 시에는 공고가 난 대로 공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공급량도 '뻥튀기' 기다리던 서민 울분
서울시와 SH공사는 매년 시프트의 공급량을 부풀려 발표하고 있는 것도 서민 주거 안정을 오히려 그르치고 있다. 실제 목표량을 채우지 못하면서도 실적에 급급해 공급량 늘리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난이다. 이에 따라 시프트 청약을 기다리는 서민들은 부족한 물량으로 청약기회마저 잡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SH공사에 따르면 서울시는 오는 2018년까지 총 13만2000가구의 시프트를 공급할 예정이다. 올해에만 당장 1만244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와 SH공사는 공급량을 맞추기 위해 진땀을 흘리고 있다.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뒤 무책임하게 발표했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실제로 올해 공급 예정인 1만244가구 가운데 2000여 가구가 내년도 공급물량으로 이월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 공급 예정이었던 서초구 우면2지구와 세곡5지구의 공급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서울시는 387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으나 공급량은 2625가구에 그쳤다. 2009년에도 목표치인 1만2800가구에 크게 못미치는 3243가구에 만족해야 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면2지구의 경우 원주민 토지 보상 문제로 송사에 휘말려 현재 총 12개 단지 가운데 일부만 착공한 상태"라며 "세곡5지구도 타워크레인 설치 문제로 인해 착공이 늦어져 분양시기가 이르면 내년 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주부 김모씨는 "우면2지구에 올해 시프트가 들어온다고 해 재개발지구 아파트 청약을 포기했는데 시프트 공급이 늦어진다니 미칠지경"이라며 "서울시가 시민들은 우롱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kye30901@ajnews.co.kr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