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길 칼럼) 사색당쟁 접고 위기해법 고민해야

2010-11-25 20:01

세계경제가 이 가을에 환세기(換世紀)형 몸살을 단단히 앓고 있다. 미국발(發) 금융위기 바이러스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의장을 역임한 그린스펀이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라고 평가했을까

158년 전통을 자랑하던 세계4위의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가 파산신청을 하던 지난 9월15일. 미국 월스트리트의 명소인 뉴욕타임스 스퀘어는 ‘이제 끝났다’는 침통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산업은행이 인수협상에서 발을 빼자 리먼은 곧바로 사망의 소용돌이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불과 10년 전 IMF 위기당시 한국경제의 위기관리 자문역을 맡았던 리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미국이 자존하던 5대 투자은행 가운데 베어스턴스와 메릴린치는 깃발을 내렸고, 나머지 ‘빅2’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절대 권력의 투자은행을 포기한 채 보수안정의 상업은행으로 탈바꿈했다. 월스트리트의 또 다른 최신예 첨병인 헤지펀드는 파산 공포에 떨고 있다. 시장경제의 상징인 월스트리트가 미국 의회의 구제법안에 목을 매달고 중국과 일본에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셈이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이후 100년 가까이 전 세계를 정복해 왔던 팍스아메리카나. 그 미국의 절대 금융권력이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의 발화점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시장만능주의와 도덕적 불감증속에 탄생한 파생금융 상품이다. 월스트리트가 이 탐욕의 금융상품 탓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위기는 당장 세계경제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가 사실상 세계경제와 세계기업에 돈을 공급하는 혈맥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흔들리니 세계금융시장은 심리적 공황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미국정부가 대마불사(大馬不死)를 외치며 공적자금 투입에 열을 올리고 부시대통령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 구원의 전화를 하는 모습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설립되던 1944년의 무정부사태와 유사하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미국발 금융위기 속에서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나라들은 비(非)서방국가다. 유럽 국가와 금융기관들은 이미 탐욕의 파생금융상품을 공유해 왔으니 위기의 여진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반면에 외환보유고가 두둑한 중국과 중동, 러시아는 지금 시점에선 절대권력의 현찰 부자다. 2002년 이후 호황을 누려온 일본도 세계금융시장 재편에 참전(參戰)하고 있다. 리먼브러더스 아시아법인 인수와 모건스탠리 지분 20%인수를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다보니 세계금융위기가 진정되고 나면 아시아가 미국을 추월하리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는 19세기 유럽과 20세기 미국에 이어 21세기에는 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중심축이 되리라는 전망까지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아시아권에 속해 있는 한국의 오늘은 어떠한가 수출주도형 한국경제는 고유가와 원자재값 폭등뿐 아니라 금융시장 경색까지 겹쳐 이만저만 힘든게 아니다. 여기다 10년만에 진보에서 보수로 정권을 바톤 터치 한 탓인지 경제-정치-외교 모두가 아직은 불안한 모습이다. 한마디로 내우외환(內憂外患)의 형국이다. 아시아시대가 열린다고는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한국으로선 오히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5000년 역사 속에서 한반도는 항시 중국과 일본에 부대껴가며 생존해 왔다. 중국과 일본의 강세가 이웃사촌인 한국에 호기이자 위기를 동시에 가져다 준 것 또한 사실이다. 최근에도 베이징올림픽과 동북공정을 통해 중화부활(中華復活)의 의지를 목도했고 독도사태로 일본 우파의 속내도 확실히 읽었다. 5000년 역사 속에서 한반도가 처음으로 중국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현실도 우리로선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근래 들어 일본이 미국과 동맹(Ally)관계로 올라서고 한국이 미국과 전략적 파트너(Partner)로 내려선 변화도 예사롭지 않다. 북핵문제로 인해 한반도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정치-경제-외교적 영향력을 구사하는 세계열강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형국이다. 역사적으로 곰씹어보면 한반도는 100년 전의 외교적 퍼즐게임에 빠져든 느낌이다. 한반도가 새로운 아시아 시대에 해양세력(일본과 미국,유럽)과 대륙세력(중국과 러시아)이 패권경쟁을 벌이는 지정학적 요충지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환세기형 몸살을 이겨내고 한국이 새로운 아시아시대에 우뚝 설 수 있는 길은 어떠한 것일까?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시계제로의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그나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100년 전의 역사적 교훈을 온고지신(溫故知新)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역사적 자중지란의 사색당쟁(四色黨爭)을 접어두고 글로벌정신의 전략적 외교마인드로 무장하는 일이 화급하다.

발행인 곽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