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포커스] "경기침체 끝나도 비상대책은 남는다"

2010-05-19 16:12
WSJ, "경기침체 비상전략 경기회복기에도 유용"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기업들은 경기침체 속에 경영전략을 대거 뜯어고치며 비상대책을 잇따라 도입했다. 비용절감을 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시행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눈을 돌린 기업도 적지 않다.

경기회복 조짐이 짙어지고 있는 요즘 기업들은 또 어떤 변화를 준비하고 있을까. 경기회복기의 과실을 하나라도 더 따먹으려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을 궁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상당수 기업들은 불황에 직면해 마련했던 전략들을 폐기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경기침체는 끝나가지만 경기침체 속에 도입된 경영전략들이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불황의 한 가운데서 효과가 검증된 만큼 경기회복기에 성장동력으로 삼아도 문제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해롤드 서킨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시니어 파트너는 "기업들은 더 이상 과거의 경영전략을 되찾으려 하지 않는다"며 "경기침체기의 비상 조치들이 경기회복기에도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 아웃소싱업체 리저스(Regus)그룹도 비상전략을 상시전략화해 재미를 보고 있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미국과 유럽에서 기업을 상대로 업무공간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리저스는 2007년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지면서 궁지에 몰렸다. 비용절감에 나선 기업들이 기존 사무실 규모와 출장 횟수를 줄이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리저스는 고객들이 원하는 게 뭔지 알아내기 위해 '포커스그룹'을 꾸렸다. 마크 딕슨 리저스 최고경영자(CEO)는 "평소에는 포커스그룹을 꾸리는 일이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포커스그룹은 시장조사를 통해 고객들이 저렴하면서도 좀 더 다양한 가격대의 사무실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딕슨은 저가 옵션의 경우 중소기업이나 프리랜서들의 수요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내부 논의 끝에 그는 5일간 리저스가 보유한 공동 사무실이라면 어디에서나 책상 하나를 사용할 수 있는 69달러 짜리 상품을 선보였다. 또 리저스비즈니스센터에 있는 '비즈니스라운지'를 한 달간 25달러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상품도 기획했다. 하루 75달러는 줘야 사무실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경기침체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상품들이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2007년 30만명도 안 됐던 고객수가 최근 50만명을 넘어선 것이다. 리저스는 연말까지 고객이 60만명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딕슨은 "경기침체 덕분에 과거보다 훨씬 뛰어난 비즈니스모델을 갖추게 됐다"며 "새로운 전략으로 고객층이 크게 확대된 만큼 포커스그룹을 계속 운영하며 더욱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을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제약ㆍ화학 전문업체 바이엘 북미법인의 재료과학 사업부문도 제조업의 몰락과 함께 어려움을 겪었다. 폴리우레탄과 폴리카보네이트 등 생산제품이 자동차나 건설, 가전, 가구산업 등에서 씀씀이가 크기 때문이다. 경기침체로 제조업종의 수요가 줄면서 바이엘 북미법인 매출은 27%나 급감했다.

이 회사의 그레그 베이브 CEO에게 남은 선택은 공격적으로 다른 시장을 개척하는 것뿐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해 연구개발(R&D)에 5억700만달러를 투입했다. 비용절감을 위해 임금을 동결하고 생산량을 줄인 상황이었지만 R&D 투자는 한 해 전에 비해 10% 늘린 것이다. 엔지니어와 연구인력도 잇따라 영입했다.

베이브는 4명 단위로 팀을 꾸려 미국의 기후변화법안을 토대로 친환경건축과 대체에너지 부문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바이엘 미국법인은 파도를 전기로 전환하는 터빈 개발에 착수했고 미 에너지부로부터 75만달러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1분기에는 실적도 개선돼 20%에 가까운 매출 신장을 기록했다.

미국 전력업체 듀크에너지는 경기침체기에 도입한 비용절감 프로그램을 상시화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경기침체로 공장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면서 전력 수요가 줄자 듀크에너지의 짐 로저스 CEO는 즉시 비용절감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획기적인 방안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자 그는 지난해 전 임직원을 상대로 1억달러의 운영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공모했다. 목표치가 충족되면 거액의 보너스를 준다는 조건이었다. 목표는 달성됐고 최근 절감 목표는 1억5000만달러로 늘어났다. 로저스는 "올해도 운영비용이 늘어나지 않도록 비용절감 아이디어를 공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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