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새벽 인력시장 "봄이 오니 살길이 보여요"

2010-04-15 10:50
-서울 강동.경기 성남 새벽 인력시장<BR> 3월부터 일거리 증가...8시엔 3-4명만 남아. 장기 근로자도 늘어...경기회복 청신호 조짐


(아주경제 김선국 기자) "요즘에는 일자리가 많아요."
12일 새벽 7시.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있는 C인력소개소. 이종심 소장은 "실제 경기가 나아지는지 겨울에 비해 일거리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하루벌이 일거리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찾아간 인력시장이 의외로 한가해 '요즘 일자리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몰렸던 '일당' 구직자들이 대부분 일거리를 구해 시장을 빠져나갔던 것.

추운 겨울인 두달 전만 해도 새벽 일거리를 얻는 사람은 절반도 채 안됐다. 이 시기에는 일자리도 없었거니와 있더라도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기능공)'들이 우선적으로 간택됐다. 이에 따라 일거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의 힘겨운 발걸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씨가 풀린 요즘은 일용직 근로자들이 인력시장에 나가는 즉시 거의 채용된다고 했다.

실제 이날 새벽 4시부터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해 파장 무렵인 8시까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자리를 지키고 앉은 이는 3~4명 뿐이었다.

최근 이 시장의 특징 중 하나는 장기 고용된 일용직 근로자들도 많아졌다는 것.

40~50대로 보이는 30여명이 어둠 속에 모여서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동료 중 누구누구가 일당이 센 모 건설사에 장기 고용됐다는 등 얘기들이 화제에 올랐다.

한 40대 남자는 작업복이 담긴 낡은 배낭을 깔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장기 고용된 한 동료를 부러워했다. 이 동료는 지난 한달간 일해 받은 돈으로 겨우내 밀린 방세와 공과금을 모두 갚았다고 했다.

이 소장은 "요즘엔 일거리가 많아져 우리만의 새로운 인력소개 방침을 만들었다"며 "겨울철에 일이 없는 날을 미리 대비해 성수기 때 열심히 하는 사람, 더운 여름철에 고생했던 사람, 성실한 자 등을 우선순위로 해 일자리를 배정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수도권 최대의 인력시장이 위치한 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에 있는 H인력센터도 상황은 비슷했다. 여기서도 건설현장에 일주일 이상 고용된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작은 배낭을 멘 박모씨는 "나는 H건설현장에 장기 고용된 상태"라며 "인력시장은 경기도 경기지만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곳 역시 지난 2월에만 해도 날씨가 추운 데다 마땅한 일자리마저 적어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임 모씨는 "추운 겨울에는 일이 없고, 일용직 근로자들도 날씨 때문에 다른 일을 찾는다"며 "겨울엔 월급제로 차 안에서 따뜻하게 택시운전을 한다. 일자리가 많고 날씨가 풀리는 3월 쯤 일당이 센 일용직 근로자로 다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오 모씨는 "작년에는 봄이 됐어도 일자리가 생각보다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확실히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김한길 H인력센터 사장은 "파트너(벽을 자르는 기능공), 미장 등 14만~15만원의 고액 일당을 받는 기능공들의 수요가 많고 기본 일당 8만원짜리도 사람이 부족할 정도"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요즘에는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에도 일거리가 많아졌다"며 "항상 이런 날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악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혹한을 물리치고 인력시장에 '봄'이 오고 있다.

uses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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