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포커스] 혁신적인 '저가전략', 설계부터 다르다

2010-04-11 17:55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전 세계 기업가에 '비용절감'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소득 수준이 낮은 신흥시장과 경기침체로 씀씀이가 줄어든 선진국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려면 경쟁사보다 더 싼 제품을 내놓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100 달러 짜리 노트북 컴퓨터와 단돈 20 달러 짜리 유럽 역내 항공권, 2500 달러 짜리 승용차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무턱대고 비용을 낮출 수는 없다. 소비자들에게 '싼 게 비지떡'이라는 인상을 줬다가는 시장 공략은커녕 시장에서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업체 액센추어의 마크 포스터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에서 제품 설계 및 개발 초기 단계에 비용절감에 나서야 부작용을 막고 기회를 거머쥘 수 있다고 지적했다.

   
 
라탄 나발 타타 타타그룹 회장과 세계 최저가 차 '나노'

포스터는 인도 자동차 메이커 타타모터스가 지난해 선보인 세계 최저가 차 '나노'를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았다. 가격이 2500 달러에 불과한 나노는 조만간 유럽시장을 달리게 될 전망이다. 포스터는 가격에 비해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는 나노가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시장에서도 충분히 선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제너럴일렉트릭(GE)이 인도시장 공략을 목표로 개발한 심전계(EKG) 역시 미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처음부터 가격 거품을 빼고 개발된 제품인 만큼 고가의 의료장비가 판치고 있는 미국시장에서 상당한 가격 경쟁력을 뽐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터는 타타의 나노나 GE의 심전계가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혁신성을 두루 인정받을 수 있었던 비결을 소개했다.

◇혁신성과를 재검토하라
포스터는 더 적은 비용으로 제품이나 서비스의 혁신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진 혁신성과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의 경우 은행의 소매 금융 업무에 일대 변혁을 불러왔다. 그러나 최근까지도 은행들은 수표를 처리하는 데 상당한 비용을 치러야 했다. 불안한 마음에 고객들이 ATM을 통한 수표 처리를 꺼렸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 웰스파고는 캘리포이나주 전역에 2000여개의 새 ATM을 설치해 문제를 해결했다. 광학식 문자 인식(OCR) 기능과 ATM에 입금한 수표 사본을 출력해 주는 기능을 추가해 수표가 잘못 처리될까 걱정하는 고객들을 안심시킨 것이다. 이로써 수표 처리 비용 역시 72% 줄었다.

◇아이디어를 진화시켜라
신흥시장 공략 아이디어는 선진시장에서도 두루 통할 수 있다. 다만 신흥시장에서 성과를 낸 혁신 아이디어를 선진시장에 적용하려면 일종의 '버전 전환'이 필수적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포스터는 GE가 저가 심전계를 개발할 수 있었던 과정에 주목했다. 저가 심전계 아이디어는 중국시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처음 나왔지만 새 제품은 인도 농촌지역으로 확산됐고 1000 달러에 불과한 가격 덕분에 미국시장에서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역별로 분산돼 있는 싱크탱크가 자체 전략을 수립하고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회사 차원에서 공유한 결과다. GE는 이를 '역혁신(reverse innovation)'이라고 부르고 있다.

◇낮추려면 과감하게 낮춰라

포스터는 가격을 내리려면 과감하게 내리고 장기간 같은 가격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경쟁업체가 스스로 시장을 포기하도록 하라는 얘기다. 다만 경쟁사와 차별되면서 수익도 낼 수 있는 수준이라야 한다. 비용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가능한 일이다.

포스터는 가격전략을 잘못 세워 몰락한 기업으로 미국 저가항공사 피플익스프레스에어라인스를 꼽았다. 이 회사는 매우 낮은 항공료를 제시했지만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을 막지 못했다. 그 결과 저가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고 피플익스프레스는 자금난에 굴복, 텍사스에어에 이어 콘티넨탈에어라인스에 잇따라 인수되는 수모를 겪었다.

◇소비자의 움직임을 주시하라
포스터는 특정 그룹보다 일반인들의 일상과 제품 사용벽을 관찰해야 더 많은 혁신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의 '일상' 속에서 신흥시장 진출 틈새를 발견한 사례로 일본 전자업체 파나소닉을 소개했다. 파나소닉은 베트남 사람들이 얼음을 많이 소비한다는 점에 주목, 재빨리 각얼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냉장고를 출시했다. 일반 냉장고에 비해 여닫는 문의 수를 줄여 가격을 낮춘 만큼 시장의 호응도 컸다.

이밖에 포스터는 제품의 비용구조를 정확히 이해하고 다양한 정보를 통해 구조를 개선해야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비용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품의 수명주기를 면밀히 분석해야 한다. 제품 개발과 생산은 물론 고객 입장에서 제품을 구입하고 사용하다 폐기하는 데 드는 모든 비용을 감안해야 회사와 고객이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가격을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노처럼 혁신적인 가격대의 제품은 새로운 시장도 창조한다. 경제적인 이유로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를 타야 했던 인도의 오토바이족들이 오토바이를 버리고 나노를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오토바이 대체시장이 서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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