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가 쓴소리 안 하는 진짜 이유는
2010-04-05 11:19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여전히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올 1분기 35개 국내증권사들이 발표한 기업분석 보고서 5685개 중 매도 의견을 제시한 보고서는 고작 13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 스스로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법인고객인 기관 투자자 눈치를 보다보면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입을 닫아야 한다는 것.
5일 증권업계와 와이즈에프엔에 따르면 올해 1~3월 국내증권사 35곳에서 발표한 기업분석 리포트는 하루평균 92.5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4% 증가했다. 그러나 이 중 '매도'에 해당하는 보고서는 고작 13개, 여전히 0.23%에 불과하다.
통상 증권사 기업분석 리포트는 △강력매수 △매수 △유지 △매도 △강력매도 5단계의 투자 의견으로 나뉘지만 사실상 '강력매도'는 있으나 마나 한 실정이다. 2008년 이후 '강력매도' 의견은 단 1건도 없었기 때문.
매도 의견 역시 여전히 전체의 0.5%에도 미치지 못한다. 2008년 매도 보고서는 14개로 전체의 0.07%에 불과했다. 작년 매도 의견이 3배 가까이 늘어 모두 53개의 매도 보고서가 나왔지만 비중은 여전히 전체의 0.23%에 그쳤다.
애널리스트들은 스스로도 이를 모르지 않지만 현실상 소신있는 의견을 제시할 수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널리스트는 "이런 현실을 가장 안타까워 하는 이들이 바로 애널리스트"라며 "하지만 부정적 보고서를 꺼려하는 펀드매니저와 기업 관계자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고 토로했다.
'매도' 등 부정적 견해를 담은 투자의견이 주고객인 펀드매니저, 투자자, 기업 관계자의 이익과 상충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유능한 애널리스트가 되려면 입을 닫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주름잡던 유명 애널리스트들이 기관으로 둥지를 옮기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도 바로 이 탓이다.
실제 이번 산은자산운용에 신설될 리서치센터 센터장 자리엔 15년 간 애널리스트, 이코노미스트, 투자전략 전문가로 활동해 온 애널리스트가 내정됐다. 그는 이달 13일부터 산은자산운용으로 출근한다.
앞서 지난 1월에도 국내 대형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이 우리자산운용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 2006년부터 3년 연속 홍콩의 경제지 '아시아머니'가 선정하는 한국내 최우수 애널리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던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대표적 비관론자로 분류됐다.
때문에 소신있는 보고서 작성을 위한 업계 차원의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가 오는 7월 도입하겠다고 밝힌 '애널리스트 공시제도'도 그 일환이다. 제도가 시행되면 애널리스트는 최근 1년간 작성한 보고서, 매도ㆍ매수 추천 관련 정보가 공개된다.
아주경제 김용훈 기자 adoni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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