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리먼과 엔론 몰락의 교훈
지난 주말 미국 월가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몰락 원인을 분석한 보고서가 공개됐다. 일종의 검시 보고서다. 뉴욕 남부파산법원으로부터 조사를 의뢰받은 안톤 발루카스 변호사가 1년여만에 내놓은 것으로 2200장에 달한다.
리먼의 직접적인 사인은 경쟁사들이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씨티그룹과 JP모건이 리먼에 추가담보를 요구한 게 결정타가 됐다. 이미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린 리먼에게 추가담보 요구는 파산하라는 얘기와 다름없었다.
리먼 스스로 키운 화도 외부 요인 못지 않았다. 레포(REPOㆍ환매조건부채권매매) 거래에 중독됐던 것이다. '레포 105/108'로 불리는 이 거래는 리먼이 현금 100 달러를 빌릴 때 105~108 달러 어치의 채권을 담보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물론 담보는 만기가 돌아오면 되사야 한다. 하지만 리먼은 레포로 들어온 돈을 돌려막기에 투입하며 담보로 제공한 채권을 매각한 것으로 눈속임했다. 망하기 직전 3분기 동안 이렇게 해서 숨긴 빚이 500억 달러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파산 당시 최고경영자(CEO)로 있던 리처드 풀드가 이런 사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는 점이다. 회계감사를 맡았던 언스트앤영도 리먼의 '화장발'을 문제삼지 않았다.
레포 105/108은 리먼이 독점적으로 활용한 거래방식이거나 불법이 아니다. 내부나 외부감사인의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문제였다. 2002년 엔론의 회계부정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미국은 엔론 사건 직후 샤베인-옥슬리법을 도입해 기업 회계기준을 강화했다. 그러나 회계관리시스템을 기업 스스로 점검토록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외부감사인이 감사 대상 업체로부터 비용을 받는 구조에서는 언제든 감사인과 피감사인 사이의 유착 의혹이 불거질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최근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업 회계 감사에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같은 규제당국이 직접 고용한 외부 감사법인을 투입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과 회계법인의 유착 의혹은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는 만큼 미국의 회계시스템 개혁 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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