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경영 포커스] 대형제약사, 아웃소싱으로 희귀의약품 개발투자

2010-02-17 08:46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에 들일 여력 부족해... 아웃소싱 늘려 의약품 포트폴리오 다양화

   
 
 
글로벌 제약업계가 연구ㆍ개발(R&D) 전쟁의 포문을 열어젖혔다. 1300억 달러 규모의 의약품 특허가 향후 4년 안에 소멸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콜레스테롤 처방제인 리피토(Lipitor)나 항우울제인 프로작(Prozac)과 같은 단일 '블록버스터'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대규모 투자는 없을 전망이다.

대신 제약업체들은 중소형 기업 인수나 라이선스 계약 등을 통해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수요층이 넓은 '희귀의약품(orphan drugs)'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아웃소싱을 극히 꺼리던 R&D 부문마저 공개해 다양한 희귀의약품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실제로 화이자는 지난해 12월 이스라엘 제약업체 프로탈릭스로부터 희귀질환인 고셔병 치료제에 대한 제약 기술과 전세계 라이선스를 사들였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와튼스쿨이 내는 경영웹진 '날리지앳와튼(Knowledge@Wharton)'은 최근 글로벌 제약업체들이 굳게 닫혀 있던 R&D 부문의 빗장을 풀고 중소 제약업체들과 기술을 제휴하거나 아웃소싱을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위기 여파로 업체들이 블록버스터급 신약 개발에 공을 들일 여력이 부족해지면서 아웃소싱을 통해 수익을 낮추더라도 다양한 희귀성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제약업계에서 R&D부문을 외부업체에 맡긴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다. R&D 부문은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하는 핵심부서로 철저한 보안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경제위기로 대형제약사를 중심으로 수백만명의 환자를 위한 대박 제품이 아니라 수천명을 위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나서는 등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를 위해 외부에 R&D부문을 개방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일례로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은 바이오기술제휴업체들이 신약개발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일종의 바이오기술벤처모델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GSK R&D 연구원들은 회사로부터 일정금액의 지원금을 받기 위해서는 제휴업체의 임원 및 외부 전문가들에게 신약 개발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제공해야 한다.

스위스 제약업체 노바티스 역시 알츠하이머나 암과 같은 '대박시장'에 초점을 맞추던 방식에서 최근 연구자들 사이에 비교적 이해도가 높아 치료제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또 지난 1월 스위스 제약업체 로슈는 벨기에 바이오기술업체인 갈라파고스에 R&D 부문 일부를 아웃소싱했다.

갈라파고스는 로슈로부터 5억7300만 달러를 받아 만성폐쇄성질환(COPD)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날러지앳와튼은 그러나 제약업계가 R&D 부문에 대한 아웃소싱 인프라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R&D 조직에 대한 새로운 운영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감사회계법인인 KPMG의 데이비드 블럼버그 의약산업 고문은 "제약업계의 이같은 R&D 부문 개방은 매우 드문 현상"이라며 "아웃소싱 초기 단계에는 핵심적이고 전략적인 부문을 외부업체에 맡기지 않는 것이 정석이지만 최근 제약업체들은 R&D의 핵심영역마저 아웃소싱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웃소싱시장에 갓 발을 내디딘 대형 제약업체들은 우선 R&D업무를 맡긴 아웃소싱업체와의 관계와 역할을 명확히 하는 운영모델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제약회사의 R&D는 개발 초기부터 임상실험, 제품 출시에 이르기까지 회사 소속 과학자나 연구팀이 일임했기 때문에 제품개발에 헌신을 다했다.

그만큼의 보상이 따를 뿐 아니라 한 번의 실수가 회사에 수백만 달러의 손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책임감도 컸다.

하지만 다양한 고객과 다수의 계약관계에 있는 외부 연구자들에게 내부 연구자들과 같은 열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외부 연구자들에게 R&D를 위탁할 경우 적절한 보상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블럼버그 고문은 강조했다.

개인적인 성향이 강한 연구원들이 협업문화를 구축할 수 있을 지도 R&D 아웃소싱 성공의 관건이다.

래리 레비니아크 와튼스쿨 경영학 교수는 "주로 혼자 연구하는 고학력의 과학자들이 외부 인사들과 이마를 맞대고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기란 매우 어렵다"며 "R&D 부문에 영입된 외부 연구자는 조직의 전략적 필요성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행동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때문에 그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높으면서도 기업 내 연구자들과의 통합력이 뛰어난 외부 연구자를 물색하라고 주문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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