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칼럼)2010년 트렌드 점쾌

2010-01-17 14:12

   
 
 
매해 연말 다음 해 트렌드를 전망하는 이야기들이 미디어에 회자되기 시작한 건 2004년 연말 부터였을 것이다. 2002년 한일 공동 월드컵 당시 강한 인상을 남겼던 'W세대'를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인식한 마케팅 관계자들이 나팔수였다. 미디어는 이들의 발표를 인용한 '트렌드 전망'을 매년 연례행사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트렌드라는 것은 사업부서의 연간 사업목표처럼 매년 새롭게 설정될 수 있는 미션 아이템이 아니다. 트렌드는 다양한 사회 현상을 귀납적으로 추적ㆍ관찰한 뒤 미래지향적 해석관점을 덧붙여 대략 10년 이상의 장기 추세를 예측하는 개념이다.

그런데도 트렌드라는 용어가 발음하기 좋아서 그런지 매년 연말이면 유행처럼 다음해 트렌드 전망이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신문, 방송, 출판물 등에 교수, 박사, 전문가, 업계 관계자 등이 예측했다는 트렌드 전망이 넘쳐난다. 엄밀히 말하면 전망이 아니라 점괘에 가깝지만 그나마 앞날을 내다보고 뭔가를 도모하려는 노력으로 여겨져 나름 의미 있어 보이기는 하다.

2010년 대한민국의 트렌드 전망은 어떻게 거론되고 있을까?

서울대 김난도 교수팀은 '소비의 양극화와 다극화' 현상을 관찰한 뒤 나름대로 키워드(TIGEROMICS)를 지어내서 재미있게 풀이하는가 하면 '삼성과 LG 경제 연구소'등은 경제와 국가안보, 금융 등의 변수를 중심으로 경제의 미래를 전망하거나 과학기술의 발달 양상을 논하며 미래 소비자들의 성향을 예상한다. 한국트렌드연구소 김경훈 소장은 '적자 생존'을 원 포인트 키워드로 개인들의 파워가 다차원적으로 강화될 거라는 예측을 내놓는다. 

   
 
 
   
 
 

이들의 전망은 팔색조처럼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분모가 있다. 다름아닌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모든 게 변할 것이다, 라는 예측이다. 어쩌면 이들의 젊은 '의지'인지도 모르지만 시대가 빠르게 면서 금기(禁忌)가 깨지고 권위가 무너지고 금권과 관권의 힘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점점 똑똑해지고 노련해지는 개인들이 스스로 자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추세인 것은 맞는 것 같다. 

   
 
 
트렌드 키워드 몇 가지만 추려도 금새 '아! 그렇구나'하고 고개가 끄덕여진다. 스마트 퍼스널(똑똑하고 합리적인 사고의 소유자들, 고학력 인구의 증가), 액티브 시니어(활동적이며 노련한 고령 계층), 임플란트 인간화(줄기세포와 디지털 기술 이식을 통해 개조된 인간), 디지털 네이티브화(디지털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능력자), 웰빙 개인주의(공공의 영역이나 타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홀로 조용히 웰빙을 추구하는 경향), 프로슈머화(생산과정에 개입하는 파워풀 소비자), 크리슈머화(상품 기획과 개발에 참여하는 파워 소비자), 소셜 네트워킹 강화(인터넷 인맥과 일맥 형성의 일상화), 섹스 자유주의, 여행하듯 사는 인간 등.

여기에 한 가지 모든 키워드를 융합한 트렌드 목록을 하나 더 추가할까 한다. 다름아닌 '조직과 개인간의 파워 게임'이다. 2010년부터 조직과 개인은 아예 서로 다른 트렌드적 가치관 때문에 으르렁 대며 곳곳에서 신경전을 벌일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처럼 개인들이 '프리덤'을 외치며 약진할 때 기존 권력인 조직이 가만 두고 보겠는가? 생각해보면 안다.

대다수 주인없는 조직들이 허명(虛名)을 유지한 채 트렌드는커녕 세태변화에도 콧방귀인 현실이다. 그런 조직의 유지에 복무하는 대다수 조직인들은 트렌드 대가들이 낡아 빠졌다고 규정한 화폐경제에 귀속돼 레버리지 게임을 벌이는 데 여념이 없다. 생계와 사치를 도모할 수 있는 구전(口錢)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직은 이래 저래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트렌드 전망이 점괘 정도로 전락하는 이유도 '조직'들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다. 대개의 트렌드 전망은 그들의 리포팅이나 브리핑에 적시해놓은 글자와는 달리 조직들의 이해관계와 상업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상업주의를 빼고 말한다면, 2010년은 트렌드 전문가들이 주문처럼 외우는 '패러다임 전환의 원년'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온 모든 가치체계가 남김없이 상대화하고 전혀 다른 차원의 인생관이 널리 퍼질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 경제와 생존을 보장해 온 달러 경제가 붕괴됐다. 고품질 기술력과 엔고의 나라 일본도 더블딥의 늪에 빠졌다. 유럽이나 중국, 인도에 뭔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자투리 이야기꺼리다. 2010년 트렌드 전망은 '전망 없음의 현실에서 성냥이라도 팔아 연명하기'일지 모르겠다. 믿거나 말거나 근거없는 '트렌드 점괘'이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