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되어버린 위안부 생활 그녀들의 수다가 더슬픈 이유

2009-09-21 10:23

연극 '특급호텔'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서

   
연극 '특급호텔'의 한 장면. 왼쪽 하단 사진에서 왼쪽부터 옥동, 선희, 금순, 보배.
 

4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4개의 공간. 4명의 여자들이 한 곳씩 서 있다. 남루한 옷차림의 그들은 텅 빈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면서 연극은 시작한다. 여기는 ‘특급호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막사의 이름이다.

넝마조각을 아이처럼 업고 다니며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는 옥동, 돌을 하나씩 주워 모으며 복수의 칼을 가는 금순, 엄마와 헤어지고 위안부로 끌려온 11살 선희, 가미카제 상사와 사랑에 빠지는 보배. 그들은 그곳에서의 생활을 이야기한다. 처음 왔을 때의 충격, 하루하루 20~30명의 군인들을 받아야 하는 일상 그리고 고향에서의 아련한 추억들….

연극 ‘특급호텔’(연출 박정의. 극단 초인)은 미국의 극작가 라본느 뮬러가 일본에 체류하던 중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쓴 작품이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이 아닌 제 3의 눈으로 그려 나간다. 참혹한 위안부 생활을 적나라하게 풀어내지만 ‘분노’보다는 그들의 ‘고통’에 초점을 맞추며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

연극평론가 겸 극작가 김명화씨는 “작품은 청각에 호소하는 들려주기 방식으로 미학적 거리감을 확보한다. 작가는 위안부 4명과 일본군을 대변하는 남자 1명만으로 최소의 인물 배치를 한 뒤, 독백에 가까운 시적 대사나 자매애를 보여주는 수다로 위안부의 고통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무대는 몇 가지의 소도구 외에는 텅 비어 있다. 이 공간을 4명의 여자들이 시적 상상력을 동원 압축적이면서도 에너지 넘치는 대사로 채운다. 무대 조명 또한 텅 빈 무대에서 하나의 언어로써 배우들의 대사에 힘을 보탠다. 한 배우가 모든 남자 역할에 등장해 역할놀이를 통한 연극성도 강화했다.

나무 바닥으로 된 무대는 배우들의 발 구름으로 그들이 끌려가는 기차가 되기도 하고, 그들의 분노와 한을 담아내는 음향 효과로 사용된다. 배경 음악도 현실의 긴박감과 고향에 대한 환상 등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유난히 많은 외국 관객들을 위한 영어 자막이 너무 밝아 집중도를 떨어뜨린 것은 ‘옥에 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0만 명의 일본군 위안부들이 있었다. 그 중 80%가 한국인이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위안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대량 학살됐다. 방공호나 굴에 갇힌 채 총알세례를 받거나 치욕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현재 여전히 고통의 세월을 삭히고 있는 국내 생존 피해자는 91명이다. 상당수가 80세 이상의 고령이다.

대사 중에 ‘진짜 세상’이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그들이 위안부에 끌려오기 전에 살았던 세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들이 그토록 돌아가고 싶었던 진짜 세상은 그들에게 무엇을 해 주고 있는지 의문을 던진다.

특급호텔은 오는 27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입장권은 1만4000원이며 여성 2인 이상일 경우 인원수대로 20~40%, 조부모 동반 관객도 30% 할인된다. 문의: 02-929-6417.

아주경제= 이정아 기자 ljapcc@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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