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정운찬 총리 후보자 모두발언

2009-09-21 10:12

존경하는 정의화 위원장님과 위원 여러분,
그리고 청문회를 지켜보고 계시는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명박 정부’의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민의의 전당인 대한민국 국회에 들어서며 저는 지금 무한한 영광에 앞서 막중한 책임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위원님들의 질의에 답변을 드리기 전에 청문회에 임하는 저의 인사말씀을 간략하게 드리고자 합니다.

충청도 공주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국립대학교 총장을 거쳐 이 자리에 서기까지 저는 우리 사회로부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은덕을 입었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해야 할 일은 성실한 봉사로써 그것을 사회에 되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님의 국무총리 후보 지명을 하나의 소명(召命)으로 생각하게 된 것도 그러한 부채의식 때문이었습니다.

저를 망설이게 한 것은 다만, 이 중차대한 시기에 국무총리라는 직책을 능히 감당할만한 역량과 자질이 있는가 하는 스스로에 대한 물음과 걱정이었습니다.

평소 제가 발표한 글이나 말로 미루어 볼 때 정부의 국정운영 철학과 잘 맞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지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저는「중도실용」과「국민통합」의 큰 뜻을 공유하면서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정을 위해 조화와 균형을 모색해 나갈 뿐만 아니라, 내각이 국민의 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이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어린 시절 역경을 극복한 경험이 비슷한 대통령님의 뜻을 살펴 춥고 어두운 구석을 두 팔로 보듬고, 삶에 지친 이들의 등을 두드려 주고,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의 터전을 가꾸는 데 열과 성을 다 기울이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 그리고 여야 위원 여러분,

지금 한반도에는 해묵은 남북 분단 상황이 지속되고 있고 우리 사회 내부적으로는 국민통합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지역·계층·세대 간에 갈등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는 한 자랑스러운 선진한국으로의 도약은 그만큼 늦어지고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권리와 책임이 동반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을 구현할 수만 있다면 우리나라가 훨씬 더 빨리 세계로, 미래로 웅비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양극단으로 치닫기보다 조화(調和)와 균형(均衡)으로 나아가야만 창조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으며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행복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조화와 균형은 ‘학의 다리는 자르고 오리의 다리는 늘리는 것’과 같은 강제적 획일이나 산술적 평등이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혜택을 많이 받은 분야는 경쟁을 촉진하고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나 서민층에게는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여 창조적인 조화와 미래지향적인 균형을 추진해야 합니다.

제가 학교행정을 맡고 있을 때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지역균형선발제를 도입하여 산간오지와 낙도 학생들의 입학 기회를 확대한 것이나, 가난의 대물림을 끊고 ‘개천에서 용이 나는’ 교육적 기반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가정, 소외된 청소년을 대상으로 계층균형선발제를 계획했던 것도 이러한 소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국회에서 저에 대한 임명안에 동의해주신다면 조화로운 사회로 발전해 나가는 균형자로서의 역할에 매진하고자 합니다. 생산성을 높여서 각자의 몫을 키우고, 사회정의를 확립하여 강자와 약자의 간격을 좁히며, 모두 자기 자리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며 서로 배려하는 사회를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던 학창시절부터 저는 국민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긍지를 느낄 수 있는 떳떳한 나라, 먹고 입고 자는 것 정도는 별 걱정이 없는 따뜻한 나라,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제무대를 주도해 나가는 똑똑한 나라를 마음속에 그려왔습니다.

정직한 사람이 대우 받고 땀 흘린 만큼 대접 받는 바른 사회,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걱정 없이 학교에 다니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희망으로 새벽을 기다리는 밝은 사회, 배경과 학벌보다 신용과 성실로 승부하는 맑은 사회를 열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앞에는 지금 청년실업 문제부터 각박한 서민생활, 과도한 사교육비, 노령화와 저출산 그리고 불안한 국제경제와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까지 ― 실로 버거운 과제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저에게 총리로서 일할 기회를 주신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각계각층의 지혜와 경륜을 모으겠습니다. 원칙과 정도(正道)로 차근차근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대통령께도 할 말은 할 것이며, 국민 여러분께도 요구할 것은 요구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위원장님과 위원 여러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들이 백 년, 이백 년이나 걸려 이룩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를 불과 반세기만에 달성한 위대한 나라, 저력 있는 국가입니다. 
  
인구가 5천만 명에 이르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달하는 나라 ―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력을 상회하는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여섯 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희망은 사람입니다. 5천만 국민 한 분 한 분이 모두 이 시대, 이 땅의 영웅이요, 이 나라의 기둥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특별한 업적을 남긴 교과서 속의 위인들만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고, 아껴가며 모은 것을 나누어 주고, 몸을 낮추어 봉사하는 분들이 모두 위인이요, 성인입니다. 

불경기 속에서도 직원들의 ‘밥’을 챙기는 크고 작은 기업인들, 자식들을 가르치기 위해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고 안간힘을 쓰는 상인들, 한여름 뙤약볕과 한겨울 삭풍도 마다하지 않는 농부와 어부들, 단잠을 떨치고 일터로 나가는 샐러리맨과 거리의 환경미화원들, 밤낮이 따로 없는 연구원과 기능공들, 자유를 지켜낸 용사들과 민주주의를 꽃피운 시민들…

바로 자랑스러운 우리 국민들이 이 나라, 이 땅의 희망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제가 총리로서 봉사하는 기회를 국회에서 동의해 주신다면 바로 이 분들이 주인공이 되는 성공스토리를 함께 쓰는 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일 작정입니다. 국민을 주권자로 섬기고 국회를 국민의 대표로 존중하면서 대통령의 성공적 국정을 위해 총리로서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일이 불안한 서민과 중산층에게 꿈을 심어드리는 ‘국민희망본부’,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대통령님의 비전을 실현하는 ‘국가경영지원본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정책서비스본부’로 기능할 수 있도록 각 부처를 지원하고 격려하겠습니다.

저는 가난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무엇이 도약의 기회인지도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의 눈의 티끌은 대들보처럼 보면서, 저의 눈의 대들보는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아 자괴감을 감출 수 없습니다.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대학 강단에 서 있었으면서도 남을 가르치기에는 수양(修養)이 부족했고 남을 비판하기에는 수신(修身)이 미흡하지 않았나,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성찰과 각오를 새롭게 할 생각입니다.
위원 여러분의 질정과 편달을 바로 국민의 말씀으로 알고 성실하게 답변을 드림은 물론이고 가슴속에 새기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