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몸값’ 오른 현대·기아차 “빅3, 나와!”
현대차 제네시스 북미 올해의 차 선정. 사진 왼쪽부터 이현순 현대차 부회장과 존 크라프칙(John Krafcik) 현대차 미국법인장 대행(Acting President)/현대·기아차 제공 |
지난 18일 현대차가 ‘2009 글로벌 100대 브랜드’에서 사상 최초로 글로벌 브랜드 가치가 46억 달러를 기록하며 60위권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고무적인 것은 이번 조사에서 도요타·벤츠·BMW 등 글로벌 톱 자동차 메이커들이 금융위기에 따른 자동차 시장 침체 여파로 지난해보다 순위가 하락한 반면 현대차는 지난해 72위에서 올해 3계단이나 상승했다는 점이다.
이런 기류는 이미 지난달 감지됐다. 사상 최초로 글로벌 판매순위 4위를 기록한 것이다.
세계적 권위의 미국 자동차 전문지 오토모티브뉴스(Automotive News)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자동차 회사별 상반기 글로벌 판매대수에 따르면 현대·기아차는 215만3000대를 판매해 214만5000대를 기록한 포드를 8000대 차이로 제치고 판매순위 4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 빅3 업체들이 뒤쳐진 사이 품질 경쟁력과 독특한 마케팅으로 단숨에 4위 자리를 꿰찬 것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100만대 가량 차이가 져 4위권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특유의 뚝심으로 우려를 현실로 돌아 세운 것이다.
수년 안에 GM을 제치고 글로벌 판매 3위에 오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GM이 최근 유럽의 생산·판매를 담당한 오펠을 분리한 데다 미국 판매도 당분간 회복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반기 글로벌 판매대수 1위는 도요타(356만4105대)가 차지했고 2위는 355만2722대를 판매한 GM, 3위는 310만300대를 판매한 폴크스바겐이 각각 차지했다. 현대·기아차는 2000년 글로벌 판매순위 10위에 오른 이후 2006년 6위, 2007년부터 5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10년 전 정몽구 회장이 취임하던 당시만 해도 현대·기아차의 위상은 지금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품질이나 브랜드 가치가 좋지 않았다. 해외에서의 악평도 끊이지 않았다.
해외 시장을 돌며 ‘충격’을 받은 정 회장은 돌파구를 찾기 위해 특단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품질 강화와 브랜드 가치 제고가 그것이다. 강산이 변할 정도의 긴 시간을 현대·기아차는 절치부심하게 된다. 품질 강화를 위해 미국 판매 차량에 대한 보증 기간을 10년 또는 10만마일로 설정해 품질 우려를 불식시켰다.
그 결과 2004년 국내 자동차 브랜드 최초로 쏘나타가 JD파워 신차품질조사에서 중형차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소비자만족도 2년 연속 1위에 이어 2006년에 대중차량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제네시스는 지난 7월 J.D파워의 ‘2009 신차 런칭 지수’ 1위에 이어 한국 자동차 최초로 ‘북미 올해의 차’로 선정되는 등 올해에만 모두 21개의 상을 휩쓸며 북미지역 단일차종 최다 수상 모델에 올랐다. 올해 상반기 글로벌 판매 4위에 이어 글로벌 브랜드 가치 60위권 진입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해 낸 것이다.
애써 외면하던 미국 등 해외 언론의 찬사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 폴 잉그라시아는 월스트리트저널(WSJ) 14일자에 보낸 기고문에서 현대자동차의 성공비결을 소개하며 미국 빅3가 본받아야 할 회사라고 극찬하기까지 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꾼 탁월한 마케팅 전략
지난해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현대·기아차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게 된다.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 호기를 얻게 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역발상 마케팅이다. 경쟁사가 뒷걸음칠 때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으로 틈을 파고든 것이다. 히트작은 현대차의 ‘실직자 보장 프로그램’이다. 지난 1월 2일 도입된 이 프로그램은 자동차를 구입하고 1년 안에 직장을 잃으면 차를 되사주는 것이다. 미국 시장에 신선한 충격울 가했다.
‘어슈어런스 개스 록 프로그램’도 시장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1년 동안 1갤런당 1.49달러로 기름값 가격을 보증하는 프로그램이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기름값에 대한 미국 소비자의 부담을 줄여준 것이다.
미국 대형 행사 광고 협찬도 활발히 진행했다. 지난 2월 초 미국프로풋볼(NFL) 챔피언결정전인 수퍼볼 경기에서 경쟁업체들을 따돌리고 초고가의 중간광고를 집행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중계방송에도 처음 광고를 내보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지난해 북미에서만 3200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광고 효과가 엄청나다.
글로벌 판매 효자 아이템으로는 현지화 모델 출시도 있다. 지난해 6월부터 미국에 제네시스를 선보인 현대차는 국내와 달리 V8 4.6ℓ 타우엔진을 추가해 최고급 차들과 경쟁을 붙였다. 고급차에 일반적인 후륜 구동 방식을 채택한 것도 해외 시장을 겨냥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는 지난 2007년 10월 i10을 출시했다. 현대차 인도법인의 판매를 견인하는 주요 모델로 성장했다. 전량 인도법인에서 생산되는 i10은 유럽과 아중동, 중남미 등 100여 개국에 수출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4월 현지에 맞게 크고 화려하게 변한 준중형급 위에둥(아반떼)을 판매하고 있다. 덕분에 지난해 모두 8만5974대가 팔리며 중국 시장 최고 인기 차종에 올랐다.
유럽에서는 전략모델인 i30를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규모가 큰 ‘C 세그먼트’에 2007년 여름부터 투입했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유럽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준중형 해치백 스타일의 ‘i30’은 기아차 씨드와 함께 현대·기아차 유럽디자인연구소에서 개발한 맞춤형 모델이다.
i30는 지난해 총 6만1406대가 판매돼 서유럽 시장에서 판매되는 현대차 차종 중 최고 판매모델로 기록됐다. 올해 1~2월에도 1만 887대가 판매돼 경기침체에도 선전하고 있다.
◇급변한 현대·기아차의 글로벌 위상
성과로 말을 하는 것이 경쟁자들에게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대·기아차 역시 10년 내공으로 이룬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 상승 덕에 지난달 국내외에서 작년 동기대비 20% 안팎의 판매 성장을 기록했다. 중국과 인도에서는 사상 최대의 월간 판매 기록을 세웠다.
포드(-33%) 도요타(-26%) 닛산(-23%) GM(-22%) 혼다(-22%) 등 경쟁사들과 달리 올 상반기 판매 감소폭도 2%에 그쳤다. 덕분에 세계시장 점유율도 7.5%까지 뛰었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GM과 도요타 등이 경기침체에 허덕이고 있는 것과 달리 현대·기아차는 ‘나홀로’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품질과 브랜드 가치 상승으로 2분기 현대차가 8119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내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기아차도 영업이익 3303억원이란 ‘깜짝’ 실적을 올릴 정도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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