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황영기, KB금융 앞날은?

2009-09-04 07:18

금융권의 '검투사'로 알려진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의 칼날이 결국 부러질 것인가. 금융당국이 전례를 찾을 수 없는 강력한 징계를 결정하면서 황 회장의 거취는 물론 KB금융의 앞날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3일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황 회장에게 우리은행장 재직 시절 1조6000억원 규모의 손실을 일으킨 책임을 물어 '직무정지 상당'의 징계를 결정했다. 

금감원의 금융회사 임원에 대한 제재는 일반적으로 '주의적 경고' '문책경고' '직무정지' '해임권고' 순으로 이뤄진다.

은행장급 인사에 대한 직무정지 징계는 금융감독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지난 2003년 위성복 당시 조흥은행 회장이 무역금융 사고로, 2004년 김정태 국민은행장이 분식회계로 문책경고를 받았다.

2005년 최동수 조흥은행장은 250억원대 양도성예금증서 위조발행 사고로 역시 문책경고를 받은 바 있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황 회장에 대한 중징계 검토가 타당하다는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직무정지' 징계가 결정되자 KB금융은 혼란에 빠졌다.

먼저 황 회장의 거취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직무정지를 받으면 징계일로부터 4년간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법적으로 황 회장은 2011년 9월까지 KB지주 회장직을 유지하는 데 문제는 없다. 연임만 제한된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문책경고만 하더라도 직원으로 치면 감봉에 해당되며 임원 결격사유가 돼 사실상 금융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문책경고를 받은 위정복 회장과 김정태 행장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최동수 행장이 신한은행 고문으로 옮기는 등 사실상 CEO 자리를 내놓았던 전례를 보면 황 회장 역시 결단을 내릴 가능성을 배제할 없는 상태다.

KB금융 측이 법무법인 세종을 변호인으로 선임하고 징계수위를 문책으로 낮추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 것도 직무정지 징계를 받을 경우 현직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고 수장에 대한 강도높은 제재로 KB금융의 앞날에도 먹구름이 짙어졌다. 당장 공격적으로 진행하던 보험사와 증권사에 대한 M&A부터 동력이 약해질 전망이다.

수익의 절대적인 비중을 국민은행에 의존하고 있는 KB금융 입장에서 공격적인 M&A는 황 회장이 취임 때부터 강조했던 성장동력이었다.

금융위기가 끝나가고 본격적인 경기회복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KB금융 입장에서는 좀처럼 해답을 찾기 어려운 장애물을 만난 셈이다.

KB금융 이사회는 금융위의 결정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KB금융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조담 전남대 교수는 "사안이 민감한 만큼 신중할 수 밖에 없다"면서 "금융위의 최종 결정을 지켜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일부 내외부 인사들이 황 회장 징계와 관련된 의견을 내놓고 있지만 이사회 차원에서는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의 이같은 조치에 금융권 반응 역시 신중하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단기적인 수익성에 집착하지 말고 책임경영을 하라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번 징계 결정으로 금융권은 물론 재계 경영인들의 사기 침체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지난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우리금융 회장겸 우리은행장으로 재직하면서 부채담보부증권(CDO)과 크레디트디폴트스왑(CDS) 등 파생상품에 투자했으며 이로 인해 우리은행은 파생상품 투자액의 90%에 해당하는 1조6000억원을 손실처리했다. 

황 회장에 대한 징계조치는 다음주 금융위를 통해 확정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며 예금보험공사 역시 금융위 결정 이후 황 회장에 대한 경영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아주경제=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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