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 "일단 한번 타봐"…印 버스업계 뒤집기

2009-09-02 17:45
FT, 고급버스로 틈새시장 개척 버스비도 35% 높아…버스업체도 만족

'배고픈 코끼리' 인도는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인도로 가는 길은 여전히 대만원이다. 중국에 버금가는 인구 12억명의 인도시장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도 중앙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인도 경제는 전년 동기 대비 6.1% 성장했다. 세계 주요국 경제가 일제히 뒷걸음친 데 비하면 괄목할 만하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만 믿고 섣불리 인도시장에 뛰어드는 건 금물이다. 상당수 기업들이 이미 터를 잡고 있는 데다 지역 브랜드의 텃세도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인도시장이 포화상태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류시장보다는 틈새시장을 찾는 게 위험을 더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 스웨덴 자동차 메이커 볼보를 인도 틈새시장을 개척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볼보는 인도시장에 비교적 늦게 진출했지만 선도 업체들이 간과한 '고급 버스'시장을 개척해 성공적으로 뿌리 내렸다.

인도의 고급버스시장 규모는 연간 1000대 정도로 볼보는 60~7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경기침체로 시장 규모가 줄어드는 추세지만 볼보가 판매하고 있는 고급버스 가격은 한 대당 평균 4백만 루피(약 8만2000 달러)에 달해 수익이 꽤 짭짤한 편이다.
 
볼보가 생산하는 고급버스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볼보는 인도시장 버스 매출이 25% 증가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최근에는 방갈로르 주정부가 발주하는 1만4000대의 시내버스를 수주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2001년 볼보가 인도시장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볼보버스 인도지사의 아카시 파세이 사장은 "대부분의 컨설팅업체들은 볼보가 인도시장에 진출하는 데 대해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고 말했다. 이들은 현지 기업이 생산하는 버스 가격이 볼보버스의 4분의 1도 채 되지 않아 가격면에서 경쟁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볼보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유명 브랜드지만 가격에 민감한 인도인들에게는 브랜드 가치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볼보가 인도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까지 인도에는 고급버스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버스는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조잡했다. 당시 인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버스는 현지기업인 타타모터스와 아쇼끄레이랜드가 공급하는 대형차체에 좌석만 꽂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찌는 듯한 날씨에도 에어콘은 찾아 볼 수 없었고 승용차와 다를 게 없는 110~120마력의 엔진은 높은 산악지형을 버티지 못하고 꺼지기가 일쑤였다. 트렁크 공간도 없어 승객들은 무거운 짐을 버스 꼭대기에 얹고 도난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특히 출장차 인도 전역을 오가야 하는 기업인들에게 이런 버스는 타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버스를 타고 출근해 깔끔한 모습으로 예정된 시간에 회의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인도인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볼보 경영진은 고급버스시장이 틈새시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볼보가 들여온 버스에 장착된 엔진은 인도 차도를 누비던 버스보다 성능이 두배에 달했다. 내부 공간도 훨씬 넓어 수하물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었다.

성능면에서 뛰어난 볼보 버스는 순식간에 인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압다. 특히 업무차 볼보 버스를 이용하는 승객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기존 버스보다 승차감이 뛰어날 뿐 아니라 볼보 버스를 이용할 경우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어 하루만에 업무를 마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볼보는 현지 기업들이 제공하지 않는 정비서비스를 제공해 버스운영업체들의 만족도도 높았다. 인도 현지 기업이 제공하는 버스의 수명은 3년이 채 못 됐지만 볼보는 각종 정비서비스를 제공하며 10년의 수명을 보장했다.

일례로 볼보는 2001년 일부 버스운영업체에 20명의 자동차 정비직원을 파견했다. 업체가 구입한 버스가 고장나면 곧바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자동차 정비에 드는 비용이 줄어들면서 버스운영업체들은 티켓 판매에만 집중할 수 있어 매출도 늘어났다. 실제 볼보의 버스를 운행하는 업체들은 버스의 고급스러움과 안전성을 내세워 일반 버스보다 35% 비싼 가격에 티켓을 팔고 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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