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속도를 탐하다

2009-09-02 08:02

“오전 9시에 떠나 인천으로 향하는데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뢰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중략)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독립신문 1899년 9월 19일 3면)”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899년 9월18일 국내 최초의 철도인 경인철도 개통식을 전한 독립신문에 실린 기사의 한 대목이다. 개통당시 증기관차의 평균 속도는 시속 20~22km, 최고 시속은 60km였다. 노량진~제물포 사이 33.2km를 1시간 30분 만에 주파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馬)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었던 당시 사람들의 눈에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는 거대한 쇳덩이가 ‘무서운’ 속도로 달리는 모습은 간이 오그라들 정도의 충격이었다.

대한민국 땅을 처음 밟은 자동차는 4기통 ‘포드 A형 리무진’이다.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1903년 의전용으로 미국 공관을 통해 도입했다. 이른바 ‘어차(御車)’였던 셈이다. 2인승으로, 황제가 타기에 차가 작고 소음이 심해 격에 맞지 않아 궁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국내에서 제작된 최초의 자동차는 1955년 8월 나온 ‘시발(始發) 자동차’다. 지프형 6인승으로,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에서 생산했다. 미군으로부터 불하받은 폐차를 재생해 터득한 기술로 만들어져 순수 국산차는 아니었다.

자체 기술로 만들어진 최초의 국산차는 1300cc급 소형차인 ‘포니1’이다. 국산 고유모델 1호로 자동차 대중화시대를 연 차량이다.

포니의 개발 이면에는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단호한 의지가 있었다. 정 회장은 1974년 국산차를 만들어 수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1976년 1월 드디어 첫선을 보였다. 후진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빈정대던 해외 메이커들의 콧대를 보기 좋게 눌렀다. 뜨거운 반응 덕분에 그해 국내 시장의 43% 가량을 휩쓸었다. 에콰도르에 6대가 수출되기도 했다.

‘시발’ 자동차를 시발점으로 보면 자동차 역사도 대략 55년의 세월을 헤아린다. 한 세대를 30년 정도로 잡는데, 두 세대 가량이 지난 것이다. 그동안 기술력은 물론 품질 면에서도 일취월장해 이제는 세계를 주름잡는 위치에까지 올라섰다. 일본의 아류쯤으로 여겨지던 서러운 세월을 절치부심, 권토중래한 결과다. 예민하고 감각적인 손재주를 가진 민족성도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래선지 갓 돌을 지난 아들 녀석은 바퀴만 보면 눈이 휘둥그레진다. 제 손으로 돌리고 싶어 안달이다. 심지어 LP판을 걸어놓은 턴테이블도 돌린다. 이유를 알고 싶지만, 말을 못하니 속만 태울밖에.

추측 건데 속도를 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새를 동경하던 인간의 꿈을 땅에서나마 해소시켜준 속도에 대한 벽(癖)이 DNA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애비인 나는 가끔 저속이 그립다. 느림도 어쨌든 가고 있는 것 아닌가? 잃어버린 저속을 위해, 건배!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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