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호, '고난과 희망'의 우주개발

2009-08-25 17:30


한국 첫 우주발사체인 나로호(KSLV-Ⅰ)의 성공적인 발사에는 7년간 한 곳만 보고 달려온 연구원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만든 위성을, 우리의 로켓으로, 우리 땅에서 발사한다'는 일념 하나로 사랑하는 가족도 뒤로 한 채 역경의 시간을 보내왔지만, 창공을 가르며 솟아오르는 나로호를 바라보며 환희를 만끽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밤샘 회의를 하고, 문제점을 찾기 위해 철야작업은 물론 회의 때마다 의견 충돌로 언성을 높이는 일이 잦았지만 고군분투했던 시간은 첫번째 우주발사체 성공이라는 값진 선물이 돼 돌아왔다.

말 그대로 모진 고생 뒤 낙(樂)이 온 것이다.

25일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상단부 엔진 고공환경 시험설비(HATF)' 구축팀의 일원이었던 김모 연구원은 2007년 5월 결혼식을 불과 이틀 앞두고 첫번째 설비검증 시험 일정이 잡히는 바람에 결혼식을 '중도 포기'할 뻔했다.

다행히 설비검증 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 연구원은 결혼 전날에야 동료들과 전남 고흥에서 결혼식 장소인 대구로 향했고 가까스로 결혼 일정에 맞췄다.

하지만 아리따운 신부를 맞이한 기쁨도 잠시. 그는 이틀 뒤에 예정된 두번째 설비검증 시험 때문에 신혼여행은 뒤로 미뤄야만 했다.

발사대 구축에 참여한 A씨의 사연은 2년이 넘은 지금도 안타깝기만 하다.

그는 2007년 3월 러시아로부터 발사대 설계문서를 받아들고선 죽기 살기로 발사대 구축에 매달린 탓에 병상에 누운 아내를 가까이서 돌볼 수가 없었다.

A씨는 신장수술을 받고 서울 한 병원에 입원한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만 남긴 채 다시 근무지로 돌아와야 했다.

화물 통관 업무를 담당했던 다른 김모 연구원은 올해 4월 외조부가 돌아가셨다는 '급전'을 받고 빈소가 있는 서울로 향하다 러시아에서 자재가 들어왔다는 소식에 황급히 목적지를 바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검증 시험에 쓰일 자재라 화물 통관을 하루도 미룰 수 없었기 때문. 상중이라 마땅히 휴가를 내야 했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나로호 발사까지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발사된 나로호 추적에 필요한 장비 검증을 위해 연구원들은 경비행기를 이용한 모의시험에 나섰지만, 연구원들이 탄 비행기가 갑작스런 기상 악화를 만나면서 비행장에 가까스로 착륙하는 아찔한 순간이 연출되기도 했다.

재차 감행한 모의 비행에서는 경비행기의 계기판이 모두 멎는 바람에 회항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지만, 이들의 도전은 계속됐고 이날의 성공을 있게 했다.

발사체 기술 전파에 나선 러시아 전문가들과의 '소통문제'도 한동안 나로호 개발에 애로점으로 작용했다.

러시아 측은 나로호 개발 초기 한국 기술 수준을 낮게 평가해 대화에 쉽게 응하지 않았고 연구원들은 통역이 있어도 상호 의사전달이 어려워 '이중고'에 시달렸다.

하지만 물불 안가리고 매달리는 연구원들의 모습은 러시아 전문가들을 감동시켰고 이제는 실력 인정과 신뢰구축을 넘어 해외 발사대 구축사업에 함께 참여하자는 반가운 제안을 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다이어트'에 돌입하는 다짐으로 발사체 무게를 줄이는 데 열을 올렸던 수많은 시간과 큰 실패 뒤에도 혼신의 노력 끝에 만들어낸 '킥모터(상단부 추진기관)'는 나로호 개발에 울고 웃었던 연구원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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