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칼럼) "은퇴 후 고급인력과 중소기업의 맞선"
2009-07-03 08:05
“당신은 내말 안 듣더니 그거 보라구요”
“아무리 중소기업이라지만 그렇게 재무구조가 약한 줄은 몰랐네. 돈 만이 아니냐. 처남이 전무인줄은 꿈에도 몰랐네”
대기업 퇴직 후 2년간 계약직으로 같은 직장을 다니던 50대 후반의 한 가장.
그는 올 초 차라리 중소기업이라도 괜찮은데 있으면 연봉이 작더라도 마음이나 편한 직장을 다니겠노라며 한 건설 회사에 출근했지만 출근 3일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러니 아내는 조금 머리를 숙이더라도 회사가 연장계약 하자고 할 때 했으면 되는데 연봉액이 좀 줄어들어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중소기업을 택해서 결국은 이도 저도 안되는 꼴이 되었다고 핀잔을 주는 것이다.
당장 생활비나 자녀들 학비 걱정할 만 한 가정은 아니다. 이미 큰 딸은 취업을 해있고 아들은 대학 4학년이므로 큰 돈 들어갈 일은 지닌 셈이다.
게다가 악착같은 아내가 열심히 저축을 하고 부동산 재테크를 했기에 두 부부가 몇 십 년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만큼의 재산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 집 아내는 남편이 집에서 하는 일 없이 쉬게 되자 화가 난단다.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될 정도라니 이건 심각한 것이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집 아내가 하는 말은 이렇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니 밥 차려 줘야 되잖아요. 나도 수영장 가고 모임에 가고 절에도 다녀야 하는데. 그뿐만이 아니에요. 집에 있으니까 반찬 투정은 기본이고 살림에 관한 별의 별 참견을 다해요. 또 시장에 간다고 하면 시장바구니 들고 먼저 현관 앞에 나가 있어요. 아주 어린애처럼 졸졸 따라다니려고 해요”
30년 동안 살면서 늘 직장생활을 한 남편이 그동안 고생한 것도 이해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으니 심심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단다.
하지만 자신은 아이들 키우느라 문화센터 한번 다녀보지 못하다가 수영 배우고 동창회 모임 나가고 종교활동하는 등 자유를 찾은 게 이제 몇 년 안됐다는 거다. 적어도 자신의 자유를 위해서는 남편의 실직이 장애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아내의 입장도 그럴만한 듯 싶고 남편의 입장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고령화사회는 이미 왔는데 기업에서 정년퇴직한 50대 중 후반 60대 초반의 남성들이 갈곳이 없는 것이다. 30여년 넘게 일에서 쌓은 각자의 노하우는 많은데 그 노하우와 아직 일할 수 있는 그들의 열정과 힘이 소리없이 사장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에서 이들 인력들을 제대로만 활용한다면 중소기업들에게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을 것이다.
특히 현장 기술 업그레이드나 대외적인 비즈니스에는 큰 영향력을 미칠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나는 고급인력이고 대기업 출신이므로 중소기업은 갈수가 없다. 임금이나 시스템 뭐 하나 나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는 “우리로서는 그런 인력들을 영입하면 좋지만 그들이 만족해하는 연봉과 복리후생을 해결해줄 수가 없다”고 설명한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기술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국에서 고급기술인력들을 초빙해 컨설팅을 받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있다.
일본 독일 러시아 등지에서 수 십 년 동안 전문분야 기술노하우를 쌓은 60대 70대 전문가들이 해당기업을 방문하여 기술을 전수해주고 가는 식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특수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을 것이다.
설령 대기업 공사 출신의 퇴직 전문인력들의 현장기술력과 노하우가 해외고급인력들 수준에 못미친다 하더라도 중소기업이 그들의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십중팔구는 장점이 많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은퇴한 고급전문인력들과 중소기업들의 맞선 기회를 정부든 중소기업관련 협회든 누군가가 나서서 만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물론 여기에는 중소기업들로 하여금 고급전문인력 고용에 따른 비용부담을 해결할수 있도록 조율 및 지원하는 제도가 마련이 필요할 것이며 전문고급인력들 또한 현실을 감안하여 각자의 눈높이를 낮추는 노력을 기해야 할 것이다. 작가 박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