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예술인가
2009-05-14 11:26
충장로 칼럼(예술의전당 박성택사무처장)
작년 12월의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두다멜’이라는 젊은 지휘자가 이끄는 베네수엘라의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열정적인 공연으로 한국의 클래식 팬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대부분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 한때는 마약에 손을 대기도 하고 폭력의 수렁에 빠진 경험을 가진 청소년들이었다.
한국을 찾은 여느 교향악단과는 달리 그들의 연주 자세는 엄격함 보다는 남미 특유의 흥겨움이 흘러넘치는 자유분방 그 자체였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빈민층 비율이 전 국민의 70%이상이라고 하고 그에 따라 청소년 범죄율 또한 높다고 한다.
그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다소간의 경제적 도움을 주어 교육 현장으로 끌어내거나 근본적인 조치를 통해 보다 향상된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옛말에도 가난은 나라님도 면해주기 힘들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 자신들이 인생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자신들의 삶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들에게 제공되는 양질의 환경은 단지 물질적인 풍요에만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물질적인 풍요를 보장하는 지원이나 도움보다 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엘 시스테마’라는 음악교육 시스템이 있었다.
이 교육제도는 경제학자 겸 오르간 연주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에 의해 약 30년 전인 1975년에 창안되어 베네수엘라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다. 당시 베네수엘라 젊은이들에게는 밝은 앞날에 대한 보증서와도 같았다. 엘 시스테마 교육 시스템은 음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협동심을 가르치고 희망을 안겨줌으로써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청소년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범죄율을 현저히 감소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여 지금은 남미의 주변 국가는 물론이고 청소년 범죄로 인해 골치를 앓는 세계의 여러 나라로부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매년 3000만 달러를 지원받아, 빈민가 청소년 약 25만 명이 200개가 넘는 오케스트라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리도 이와 유사한 경우가 있다. 부산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이다. 불우한 처지의 청소년들에게 음악을 교육시켜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어 과거 범죄의 그늘아래 있던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해 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유니버설발레단 또한 ‘발레 엘 시스테마’라는 캠페인을 펼쳐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한 발레 교육제도를 마련했고, 기업들 또한 그 뜻에 동참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예술은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고 발전시키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는 예술의 특성 중 하나인 교육적 기능에서 기인한다. 제도권 교육은 대학진학이나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시행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예술은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거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워주는 정서교육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음악교육은 듣기 좋은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기위한 방법을 가르친다.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옆 사람의 연주를 기다렸다가 자신이 연주해야 한다. 한곡을 완벽하게 연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을 배려해야 하고 자신이 연주해야 할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게 해주고, 노력의 열매가 얼마나 달콤한지 맛보게 해 더 큰 가치를 추구하게 해준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하고 당연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가치 있는 노력만이 사람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꿔주고 더 나아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과거 베네수엘라 청소년들의 손에는 한순간의 쾌락을 위한 마약 봉지가 들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인생을 위한 악기가 들려 있다.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는 예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교리가 없는 일종의 종교이다.’ 예술을 배우고 이해한다는 것은 좀 더 가치 있는 인생을 위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을 명확히 하기 위한 등불을 밝히는 것이다.
예술의전당 사무처장 박성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