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美기업 조세회피 뿌리뽑는다"

2009-05-05 16:32
향후 10년간 2100억 달러 세수 확충 기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다국적기업들이 해외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을 탈루하고 있는 데 대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TV로 중계된 회견을 통해 "해외로 일자리를 옮겨가는 기업들에 대한 세금특혜를 중단할 것"이라며 미국 기업들의 조세회피를 근절하기 위한 강력한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로 미 정부는 향후 10년간 2100억 달러의 세수를 확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바마는 "대부분의 미국민들이 시민의 의무로서 세금을 내고 있지만 일부 기업들과 부유층들은 이같은 의무를 회피하고 있다"며 "이는 특정 집단이나 개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들에 의해 국가의 세금정책이 결정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세법에 대한 강력한 개혁 의지를 밝힌 것으로 그는 "이 같은 법률의 허점으로 특정 기업들이 케이먼제도와 같은 해외 조세피난처를 악용해 전혀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꼬집었다.

오바마의 세제 개편안은 미국에 실질적인 본부를 둔 다국적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 세액 공제 혜택을 받으면서도 해외영업에 쓴 비용은 미국 내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는 현행 제도의 허점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의 현행 세법은 기업들이 해외영업을 통해 거둔 수익에 대해 무기한으로 과세이연 혜택을 제공하고 있으며 해당 수익을 미국내로 가져올 경우에만 과세하도록 돼 있다.

반면 다국적기업이 해외자회사 등에서 지출한 경비에 대해서는 미국 내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어 많은 기업들이 서류상으로 경비지출 내역을 역외로 돌려 납부세액을 줄일 수 있도록 돼 있다.

오바마는 "이같은 '과세유예'는 기업들이 고용창출과 투자를 해외로 이전하도록 촉진하고 있다"며 "현행법은 기업들이 미국 뉴욕에서 일자리를 창출했을 때보다 인도 방갈로르에서 일자리를 만들 경우 세금을 더 적게 낼 수 있도록 돼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미국에서 활동하는 많은 다국적기업들은 지난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는 높은 수익을 기록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2008년 해외영업을 통해 750억 달러의 수익을 거뒀고 대규모 정부 구제금을 받고 있는 씨티그룹 또한 같은 기간 228억 달러를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은 조세를 피하기 위해 해외수익을 본국인 미국으로 들여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치전문 매체인 폴리티코는 지난 2004년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들이 해외에서 7000억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동안 미국에서 납부한 세금은 160억 달러에 불과해 실효세율이 2.3%에 그쳤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향후 기업들이 해외에서 발생한 수익을 국내로 유입시킬 때까지 각종 경비의 세액공제 혜택을 유보하는 방향으로 세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그는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세금 탈루를 막고 현행 세법의 허점을 이용한 세액공제 혜택을 줄여나갈 경우 향후 10년간 2100억 달러의 세수를 추가 확보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통해 재정적자를 줄이고 중산층 이하에 대한 감세혜택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오바마는 케이먼제도와 같은 조세피난처를 악용해 국내에서 납부해야할 세금을 탈루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과세감독 체계를 대폭 강화하고 국세청 조사요원도 800명 충원키로 했다.

또 미국 내 고용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미국 내에서 연구개발(R&D)에 나서는 업체들에 대한 세액공제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오마바 대통령의 세제 개편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앞서 이들은 지난 3월 미 의회에 공동명의의 서신을 보내 '과세유예 조항' 변경에 대한 업계의 반대 의견을 전달한 바 있다.

이들 중에는 골드만삭스, 마이크로소프트(MS), 화이자, 프록터앤갬블(P&G) 등 세계적인 다국적기업뿐 아니라 미 상공회의소도 포함돼 있다.

이들은 "다른 나라의 경우 자국 기업의 해외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 아예 세금을 매기지 않는 곳도 있다"며 세제개편이 미국기업들의 공정경쟁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맥스 보커스 상원 재무위원장 역시 "미국 기업과 경제에 미칠 충격을 평가하기 위한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미온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특히 다국적기업체들을 고객으로 한 로비회사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세제 개편 방침이 시행될 경우 기업들이 아예 미국을 떠나 해외로 본사를 옮기는 등 자본이탈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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