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나?
정부가 영리의료법인 설립 허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오는 13일 의료서비스산업 관련 전문가 및 공무원들을 초청한 가운데 보건사회연구원에서 공개토론회가 개최된다. 정부가 영리의료법인 설립을 허용키로 가닥을 잡은 것은 시기적으로는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영리의료법인 허용문제는 지난 2003년 노무현정부 때부터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나 의료비인상 우려와 의료양극화 현상 심화 및 의료사각지대 발생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혀 차일피일 지연돼 왔다. 하지만 영리의료법인 허용문제를 의료비 인상이나 의료양극화 현상과 직접적으로 결부짓는 것은 지나친 발상이란 점을 지적하고 싶다.
현재 국내 의료전달체계는 건강보험이란 단일보험 체계하에서 대부분의 의료기관들이 건강보험 진료권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 건강보험 적용환자에 대한 진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강제지정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건강보험환자를 받지 않고서는 병원 운영조차 어려울 정도로 건강보험 예외 환자는 그리 많지 않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에 ‘병원비가 비싸다. 대학병원에는 자리가 없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계층이 많다’는 등의 문제점은 수 없이 지적돼 왔다. 영리의료법인 허용이 의료비 인상이나 의료사각지대 발생 등의 직접적인 요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물론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면 의료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이란 지적을 부인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도 고소득층 사람들은 병이 나면 해외로 나가서 치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결과 의료 서비스수지 적자가 연간 6000만 달러에 이른다. 의료양극화 현상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앞으로 영리의료법인이 허용되면 일부 부유층은 건강보험제도권에서 벗어난 고급진료 및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양극화현상은 심화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의료양극화 현상을 막기 위해 의료서비스를 선진화시키고 산업화시켜 나갈 수 있는 길을 막아서는 안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나마 우리나라는 세계 그 어느나라보다 건강보험 체계가 잘 돼 있는 나라이며, 의료기술 또한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우수한 편에 속한다.
의료서비스 시장에 영리목적의 자본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우수한 의료진과 새로운 의료시설을 갖추게 되면 해외로 나가는 부위층 환자와 해외환자 유치도 가능할게 될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해 발생하는 외화수입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대다수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영리의료법인을 허용하고 있다. 태국, 싱가포르 등의 아시아 인접국가들은 벌써부터 국제적인 의료허브를 표방하며 정부가 직접 나선 결과, 지금은 의료서비스로 수많은 달러들을 벌어들이고 있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도 국내 의료기관의 90% 이상은 개인의사 자격으로 설립된 의료기관들이며, 이 의료기관들은 대부분 영리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의료기관 설립 자격이 자연인인 의사와 비영리법인에 한정돼 있지만, 실제로 운영되는 형태는 영리목적의 병원들이 대부분인 셈이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영리목적의 대형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영리의료법인을 법적으로 허용해서 의료분야를 산업화시켜 나가는 한편, 소비자가 원할 경우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박재붕 기자 pjb@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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