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KTF 합병, "못 막으면 조건이나 붙이자"

2009-02-08 15:45
통신업계, 합병 조건부 인가 분위기 솔솔

"합병 자체는 막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합병 인가 조건이 뭐가 되는지가 중요하다."

KT-KTF 합병을 반대하고 있는 통신업체 한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SK·LG진영에서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잇따라 의견서를 제출하고 KT-KTF 합병을 '경쟁제한적 기업결합'이라고 주장하며 '합병 불허'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KT-KTF 합병시 어떤 조건을 붙이느냐에 초점을 맞춰 조만간 '히든카드'를 내놓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합병이 되더라도 경쟁환경에서 불리해지지 않도록 해외사례를 모으고, 합병 관련 변호사 등 전문가들과 협의해 조금이라도 유리한 조건을 붙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것.

또한 방통위, 공정위에 이어 국회에도 합병에 대한 반대 의견을 적극 개진해 합병에 따른 경쟁환경 악화를 최소화 하겠다는 전략이다.

대외적으로는 합병 절대 반대를 외치며 정부와 KT를 압박하고, 내부에서는 합병 인가를 대비해 유리한 조건 만들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제한을 막기 위해 합병 자체를 무산시키는 것이 최우선이지만 방통위가 합병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고 공정위도 합병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 분위기"라며 "따라서 앞으로 합병 조건을 두고 업체간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정부가 업체간 의견을 조율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방통위와 공정위가 빠르면 내달 중 합병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업계에서는 KT-KTF 합병 조건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있다.

우선 업계에서 합병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인 KT의 유선시장 지배력의 전이에 따른 경제제한성 우려 때문에 '시내 가입자망'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KT의 시내 가입망이 공기업 시절에 국민의 세금으로 구축된 것인 만큼 미국의 AT&T처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KT가 KTF 합병시 시내 가입자망을 분리할 경우 합병에 대한 시너지 효과를 내기 힘들다는 점에서 '시내 가입자망 분리'가 합병 조건에 포함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KT가 독점하고 있는 필수설비를 타 사업자들도 공정하고 용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공정경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며 "합병과 상관 없이 이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SK텔레콤-신세기통신 합병 때와 같이 KT의 시장점유율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KT가 유선과 이동전화 등 유무선 통합시장에서 합병에 따라 경쟁 제한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점유율을 제한하는 조치를 조건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

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신세기통신 합병과는 상황이 다르지만 합병 이후 유선, 무선 사업별로 일정 비율 이상 시장점유율이 확대될 경우 점유율을 제한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KT가 합병에 따라 마케팅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어 마케팅 활동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KT가 합병 이후 유선시장은 물론 이동전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할 경우 보조금 경쟁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 보조금 지급에 대한 제한 조건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의 신세기통신 합병 인가 조건에도 단말기 보조금 지급 제한이 포함됐었다.

여기에 유무선 결합상품 시장에서도 KT의 시장지배력이 발휘돼 후발사업자들의 결합상품 출시가 위축될 수 있어 결합상품에 대해서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와 함께 방통위가 추진하고 있는 황금주파수 재배치에서도 제한을 하는 조건도 언급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KT가 합병을 하면 통신용 주파수 중 1.8GHz, 2.1GHz, 2.3GHz 대역을 포함해 44%를 보유하게 된다"며 "이에 따라 방통위가 재배치할 계획인 800MHz 등 황금주파수에 대해서는 KT의 참여를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mosteve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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